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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네 꿈을 꾸고 나면 오한이 난다
게시물ID : lovestory_818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5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2 19:59:02

사진 출처 : http://uandromeda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KzyR9qpAdd4





1.png

천양희오래된 농담

 

 

 

회화나무 그늘 몇평 받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 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그늘보다 몇평이나 더 뚱뚱해져선

생각보다 무겁지한다

그럼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 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 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더 작아져선

생각보다 가볍지한다

그럼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에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 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더 깊고 서늘했다







2.jpg

김혜순한 잔의 붉은 거울

 

 

 

네 꿈을 꾸고 나면 오한이 난다

열이 오른다 창들은 불을 다 끄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밤거리

간판들만 불 켠 글씨들 반짝이지만

네 안엔 나 깃들일 곳 어디에도 없구나

 

아직도 여기는 너라는 이름의 거울 속인가 보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고독이란 것이 알고 보니 거울이구나

비추다가 내쫓는 붉은 것이로구나 포도주로구나

 

몸 밖 멀리서 두통이 두근거리며 오고

여름밤에 오한이 난다 열이 오른다

이 길에선 따듯한 내면의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이 거울 속 추위를 다 견디려면 나 얼마나 더 뜨거워져야 할까

 

저기 저 비명의 끝에 매달린 번개

저 번개는 네 머릿속에 있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네 속에는 너 밖에 없구나 아무도 없구나 늘 그랬듯이

너는 그렇게도 많은 나를 다 뱉어내었구나

 

그러나 나는 네 속에서만 나를 본다 온몸을 떠는 나를 본다

어디선가 관자놀이를 치는 망치소리

밤거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독의 총소리

이제 나는 더 이상 숨 쉴 곳조차 없구나

 

나는 붉은 잔을 응시한다 고요한 표면

나는 그 붉은 거울을 들어 마신다

몸 속에서 붉게 흐르는 거울들이 소리친다

너는 주점을 나와 비틀비틀 저 멀리로 사라지지만

그 먼 곳이 내게는 가장 가까운 곳

내 안에는 너로부터 도망갈 곳이 한 곳도 없구나






3.jpg

원재훈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한때 나는 편지에 모든 생을 담았다

새가 날개를 가지듯

꽃이 향기를 품고 살아가듯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별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생의 비밀을 적었다

아이의 미소를여인의 체취를여행에 깨우침을

우체통은 간이역이었다

삶의 열차가 열정으로 출발한다

나의 편지를 싣고 가는 작은 역이었다

 

그래 그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낙엽에 놀라 하늘을 본 어느 날이었다

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

창문이 열리듯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

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

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쌓여 가고

하늘은 상처투성이의 어둠이었다

밤엔 별들이 애써 하늘의 아픔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 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4.jpg

이향지구절리 바람소리

 

 

 

벽지를 걷어내고

합판을 뜯어내고

창틀에 박힌 못을 뽑아버리고

맞아들일 것인가 저 바람의 알몸을

 

저 바람엔

들이키면 게워낼 수 없는 컴컴함이 배어 있다

다락산 노추산 상원산의 희디흰 탄식이 녹아 흐르고 있다

몇 안 남은 붙박이별 뿌리를 흔드는 삽자루가 들려 있다

늘어만 가는 빈집들의 방이며 뜨락을 사람 대신 채워보는

곡소리가 묻어 있다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했던 철새들의 거세당한

깃털들이 우왕좌왕 떠 있다

 

손을 씻어 본다

발을 닦아 본다

거울 속의 얼굴을 도닥거려 본다

이불을 덮어 쓴다

 

구절리는 못 떠도 메주들은 잘 떠서

검고 푸른 홀씨들을 구절리 밖으로 날리는 밤







5.jpg

김수우사랑을 기억한다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

내 몸 속 백혈구들은

고등어 한 토막에 일으켰던 네 살 적 알레르기를

꽃밥 짓다 사금파리에 긁힌 손끝 비린내를

마흔 네 개의 봄을 먹고 마흔 네 개의 겨울을 낳은

핏줄그 뜨거운 숲을 침입한 비린내에

돌짝 가슴 온통 가렵구나

 

살아있는가견딜 만한가 내 사랑다시

누군가라는 혁명을 꿈꾸라

 

제 그림자 다 크도록 흔들리기만한 눈빛들

놓쳐버리거나 놓아버린 이름들

내 몸속 빗살창이 되었으니

표시 없이 기억나는 멍울들

기억 없이 표시 나는 흠집들

마흔 네 그루 포플러를 낳았으니그 바람소리에

온 하늘이 지독히 가렵구나

 

그래많이 여위지는 않았는가 내 사랑다시

어딘가라는 혁명을 꿈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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