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내 얼굴은 변방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17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0 19:52:34
사진 출처 : http://imagination.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kG4dFGl3wgE




1.jpg

이섬근황 이후

 

 

 

요즈음 흙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목젖을 씰룩거리며 꿀떡꿀떡 단비를

빨아대는 흙의 모습은

볼때기라도 한줌 꼬집어주고 싶도록 귀엽다

포실포실 분가루 날리는 엉덩이도 예쁘고

쌔근거리는 숨소리도 예쁘고

단내가 베어있는 불그레한 귓부리도 예쁘다

저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고 예뻐해 주면

좋아라 방실거리며

더 실한 것 더 좋은 것으로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의젓하고 대견한 녀석

 

은혜도 사랑도 입 싹 닦고 고개 돌리면

그만인 세상에

은혜를 은혜로 아는 정직한 녀석

 

가꾸고 꾸미지 않은 나를

땀으로 얼룩진 나를 더 좋아하는







2.jpg

홍윤숙여기서부터는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

보던 책 덮어놓고 안경도 전화도

신용카드도 종이 한 장 들고 갈 수 없는

수십 억 광년의 멀고 먼 여정

무거운 몸으로는 갈 수 없어

마음 하나 가볍게 몸은 두고 떠나야 한다

천체의 별별 중의 가장 작은 별을 향해

나르며 돌아보며 아득히 두고 온

옛집의 감나무 가지 끝에

무시로 맴도는 바람이 되고

눈마다 움트는 이른 봄 새순이 되어

그리운 것들의 가슴 적시고

그 창에 비치는 별이 되기를







3.jpg

박설희유등(流燈)

 

 

 

날마다 별은 무겁게 돌아눕고

사방에서 웅성거림 들려온다

환한 대낮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

 

강물에 등을 띄운다

타오르는 수백 개의 눈

 

자꾸 기슭으로 달라붙는 눈을

강심으로 밀어 넣는다

눈들이 강바닥을 비추려

제 속의 빛을 끌어 모은다

가물거리는 심지를 북돋우면

눈에서 풍경이 쏟아져 나온다

온갖 수수께끼와 질문들이 뒤섞이면서

물결 위에 이는 파문

 

파문을 끌고 간다

지느러미 돋아난다

아가미 벌어진다

어둠을 등에 태운다

물살에 파묻히며 지워질 듯

 

강이 하나씩 눈을 감기 시작한다

물 속에 제 빛을 들여보내고

고요히 한 생을 살러 간다







4.jpg

이귀영변두리

 

 

 

내 얼굴은 변방이다

 

유행을 입은 아이들은 배꼽티를 입고

중심 깊이를 보이고 있다

나의 중심은 정면에서 봐도 측면에서 봐도 비뚤한 몸

온몸 뼈가 휘어졌다

모딜리아니의 잔느처럼 갸우뚱한 얼굴

사물을 볼 때 생긴 이 슬픈 15도 각도는

너를 만났을 때부터 나를 중심으로부터 밀쳐놓은 것

중심이 움직여 꽃바람에 가고 비바람에 간다

중심이 없으니 무엇이나 중심

밥이 중심이고 글자가 중심이고 척추는 신발이 중심이다

입술이 중심이고 용천(涌泉)이 중심이기도 하다

빈 지갑이 뇌리의 중심이고 진동 없는 핸드폰이 마음의 중심이고

보이지 않는 네가 중심이고 너를 기다리는

식은 커피가 불은 라면이 중심이기도 하다

라벨의 볼레로가 여름을 태우는 중심이고

땅 깊은 겨울은 민들레의 중심이다

아이가 세상의 중심이고 울음은 삶의 중심이고

장미는 가시가 중심이다

눈동자가 없는 눈은 영혼이 중심이듯

 

변두리에서 맴도는 너는 나의 중심

가장자리인 너 나는 변두리가 편하다 벽이 가까우니까







5.jpg

이무원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글씨를 쓸 때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는

탄생과 죽음이다

긴장의 축복이요 떨림의 마감이다

붓을 따라

하얀 침묵 속으로

별이며 달이며 태양의 그림자가 뚝뚝 떨어진다

여인의 해맑은 피부가

자지러지고 일어서고 움츠리고 춤을 춘다

지천을 모아 강물을 만들고

물소리 따라 흐르니

물소리 들리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운 갈증

등 돌린 얼굴을 찾아

태산준령을 오른다

마침내

끝 자를 쓸 때는

넓은 바다에 뜬 조각배

수평선을 머리에 질끈 감는다

막막할 뿐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분다

잠시 감사와 찬송으로

잘 자란 나무며 풀들을 본다

부끄럽다

끝 자의 한 점은

한 생애의 응어리

화선지의 유언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