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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나 때문에 울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817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5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07 22:07:01

사진 출처 : http://uandromeda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SKs1cyyF7s





1.png

하재연우리의 센티멘탈

 

 

 

오늘의 고깔모자를 벗고 나면

내일의 센티멘탈에는

조금 비가 들이치거나

조금 햇볕이 쏟아진다

똑같은 목소리로 우는 양들의 이름을

구별하여 사랑하는

주인과도 같이

당신의 센티멘탈은

오늘밤 다른 색깔의 누에고치로 잠이 드는

당신을 소유한다

당신이 잠을 자는 동안

나의 꿈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듯이

당신의 여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나의 겨울에 등을 맞대고 있었지

시리고 뜨거운 등에 새겨지는

어리석은 노래들기하학들

우리의 센티멘탈은 밤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고

그것이 남길 내일 아침의 양식

숟가락과 젓가락이 떠올린

식어 축축한 밥알들의

슬픔 없는 타원형







2.jpg

황수아역전에서

 

 

 

끓는점에 도달하자 주전자가 경적을 울린다

어느 쓸쓸한 플랫폼에 서듯

떠나가는 소리와 돌아오는 소리를 동시에 듣는다

 

한 잔의 끓는 물로 열차는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불을 내려도 한동안 주전자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끓는 점과 식는 점 사이에는

설명될 수 없는 경적소리만 남아있는 것이다

 

모호한 경적소리가 들려올 때면

레일이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낀다

척추 위로 열차가 달리던 시절난 항상

등을 구부리고 다녔다

곧은 뼈를 가진 사람이 갈 수 없는 굽은 도시를 생각하며

친구들은 대부분 뢴트겐 행 열차를 탔다

되돌아온 친구는 바람을 벼려 손목을 그었지만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어찌됐던 우리는

서로에게 비겁자였다

 

주전자가 식어갈 무렵

환청으로 우회하는 경적소리를 듣는다

천천히 제 온도를 낮추는 젊음그 안에서

난 너무 오랫동안 떠날 채비를 했다

김 서린 차창을 닫고

몸 밖으로 막 떠나가는 열차

그런 뒷모습을 더 이상 그리움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3.jpg

윤성학이 땅의 아름다운 것

 

 

 

이봐요

그제 당신을 보았어요

바람의 손을 잡으셨더군요

한 아이가 놓친 풍선을 붙잡아주러

멀리 가고 계신

당신의 둥근 등을 보았습니다

 

어제 당신을 보았어요

바람과 함께 걷고 계셨지요

꽃잎이 모나게 자라지 않도록

일일이 저들의 이마를 매만지며 가시는

당신 손톱 안의 반달을 보았습니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을 지나면

둥근 몸을 가집니다

당신의 정신이 그리 생긴 까닭입니까

멀리서꼼꼼히 모서리를 다듬어

바람을 보내주셨어요

 

오늘 당신을 보았을 땐

둥근 바람의 옷을 입으시고

이 땅의 하고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둔 채

하필

땅위를 구르던 검은 비닐봉지를 택하여

동행 삼으시고

저 멀리 먼 데까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4.jpg

이재훈거울 속의 얼굴

 

 

 

거울엔 과녁이 없다

내가 거울에 입을 맞추면

오히려 그는 없고 내 얼굴만

환하다

어디를 찔러도 되돌아오는 아픔

거울은 고요다

어떤 사연도 담지 않고

내가 볼 때마다 붉게 충혈된

눈만 되돌려 주며

침묵하는 사태

나는 도시의 은유에 머물렀다가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며 와르르

내 얼굴이 무너짐을 본다

형체없는 얼굴

소실점으로 모이지 못하는 얼굴

폭력 앞에서의 쓴 웃음과

이별의 순간에 지었던 바보 웃음도

거울은 모른 체한다

말이 없는 두려운 침묵

내 가방엔 거울이 없다

사무실에도 햇볕이 살아 있는 시간에도

날 돌보지 않는다

어둠이 밀려와 환각이 날 감쌀 때

그는 조용히 내게로 와서

반짝반짝 날카롭게 웃는다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없다

더더군다나 그 무서운 고요에게는







5.jpg

김은경나는 나 때문에 울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짧은 순간에

새들이 날개를 털며

그 날의저문 하늘 끝을 날았다

 

아픈 노을 위로 날아오르던

검은 고무줄의 탄성

 

누군가 가창오리라고 말할 때의

낮은 음성에서 스며 나오던 슬픔이

이제야 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인가

소사나무 이파리가 꾹 내 눈을 찔렀다

 

왜 철새들은 떠난 뒤에

날개를 털고 날아오르는 것인가

왜 슬픔은 떠난 뒤에

슬그머니 기어와 아문자리 위에

스윽 상처를 덧내고 가는 것인가

 

쓸쓸함이 번지고 오래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새의 날갯짓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 이름에서 묻어 나오는 것이다

 

안 잊혀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너무 늦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거기에 있었다

한동안을 날마다 마음을 베어놓는 슬픔은

 

등 뒤에서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철새들이 저문 하늘을 아득히 날아오르고

나는 돌아볼 수 없었다

 

찔린 눈을 비비며 나는 건널목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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