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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는 꽃을 뒤집어쓰고 죽어버렸다
게시물ID : lovestory_816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9
조회수 : 6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31 22:58:00

사진 출처 : http://sweet-coupl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5Xm9VSvb0jg





1.jpg

김나영아버지의 팔자




야들아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 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 2년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 만원이 넘는 큰돈을

삼일 만에 펑펑 다 써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2.jpg

이민하로드무비

 

 

 

맨 처음의 당신과 마지막의 당신

사이에 내가 있다

우리는 걷는다 팔짱을 끼고

새벽의 공장에서 자정의 극장까지

맨 처음의 당신은 사진 속에 누웠다가도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온다

마지막의 당신은 복면을 쓰고 지나가지만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맨 처음의 당신을 소개한다

우리는 걷는다 팔짱을 끼고

맨 처음의 당신은 앞모습만 보이고

마지막의 당신은 뒤통수만 보이고

서로 자리를 바꾸어도

얼굴은 따로따로

거울가게 앞에서 문득 멈추면 걸음은 모두 포개지고

당신의 얼굴과 나의 얼굴

서로 자리를 바꾸어도

걸음은 따로따로

당신의 팔인지 나의 팔인지 넝쿨처럼

옆구리를 찌르며 허공을 엮으며

우리는 걷는다 팔짱을 끼고

거리의 풍문에서 숲속의 비문까지

보폭이 다른 기억들을 끌며

맨 처음의 나와 마지막의 나

사이에 당신이 있다

맨 처음의 나는 당신을 납치하고

마지막의 나는 당신의 인질이 되어

죽어서도 나란히

우리는 걷는다 팔짱을 끼고

오른팔과 왼팔이 엇갈린 채로

빈집 같은 갈비뼈를 껴안고 거미줄을 껴안고







3.jpg

송진권각인




기억하니

물기 많았던 시절

그래서 더 깊이 패었던 시절

 

아직도 생각나니

달구지 타고 맨발 들까부르며

우리 거기에 갈 때

지네뿔에 발굽이 크던 소

양쪽 뿔에 치렁치렁 늘인 칡꽃

질컥한 길에 빗살무늬로 새겨지던 바큇자국

뒤따르던 질경이꽃

햇볕 사려감던 바큇살

어룽대며 곱던 햇발이며

연한 화장품 냄새

 

다시 돌아올 사람들과

다시 오지 못할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발을 들까부르며

쇠꼬리에 붙는 파리나 보며 시시덕대던 시절

 

물기 많았던

그래서 더 깊이 패었던 시절을







4.jpg

최승자기억의 집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 내렸다

 

그리하여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들이 넘치고

 

살아 있음에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 소리

 

무엇을 더 보내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은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도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5.jpg

이제니꽃과 재

 

 

 

여기저기에 꽃이 있었다

여기저기에 내가 있었다

 

너는 꽃을 뒤집어쓰고 죽어버렸다

 

붉고 환한 것들은 오로지 재

느리게 소용돌이치며 구름의 재

 

어둠 속에 어둠이 있었다

불타오른 자리는 희고 맑았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쓸쓸한 사람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흔적은 도처에 있었다

꽃은 가지 끝에서 피어올랐다

 

꽃은 그림자들의 재

재는 그림자들의 꽃

 

감은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다

 

꽃잎 위로 회색이 내려앉고 있었다

차가운 물에 천천히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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