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 (27세 남자)이 대장암으로 죽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사촌동생이 암이라는걸 알고선, 일을 다니면서도 매일같이 병실을 찾아와 간호해주었다.
결혼 약속도 했던건 아닐까
먹을 것도 입에 떠먹여 주거나, 장난치거나, 암이 침식하여 아파하는 동생의 허리나 등을 그녀가 어루만져 주었다
그때, 10대 꼬맹이였던 탓도 있겠지만, 동생이 죽는단건 상상도 못했었다.
"분명 이 둘은 몇년 후에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지"
라며, 병문안을 올때마다 행복한 상상밖엔 하지 못했다.
마냥 부러웠었다.
그러나, 동생의 병은 점점 나빠져갔다. 눈에 보일 정도로 말라 갔고, 눈만 떼굴떼굴 굴리게 되어 가족인 나조차도 똑바로 쳐다 볼수 없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목숨의 가벼움이 무서웠다.
그런데 그녀는 계속 곁에있었다. 동생의 말라버린 손을 잡고, 항암제의 영향으로 엉망진창으로 벗겨진 머리에 쓰는 털 모자를 만들었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병실에 들어가는것조차 싫었고 병실에 들어가더라도,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던것 같다.
동생은 암이 괜찮아지면 어딘가 가자, 이거 먹으러 가자던지 다음에 핸드폰 가장 좋은걸로 사고싶다던지 오지 않을 날에 대한 얘기만 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응 꼭 가자", "나 이거 먹고 싶어"라고 말했었다.
나는 자기 위안이라 생각하였지만, 그녀의 눈은 진심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도 따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도 무서웠을텐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분명 자기 자신이 죽는것보다 무서웠으리라 생각한다.
연말에 암이 전신에 퍼져, 폐에 전이되었다.
동생은 최초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암을 억제 시켜 주는 약이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억제시키는 효과밖에 없다.
고통이 늘어날뿐. 내 아이가 환자라면 그냥 죽게 놔둘 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였다.
부모님은 "적어도 27살의 생일까지는 살게해주고 싶다"고 연명을 바랬다.
옆에서 그녀는 말 없이 떨고 있었다.
약은 효과가 있었고 사촌동생윽 극적으로 회복 하였다.
그녀와 온천에 가거나, 근처에 여행을 가거나 했고, 신약은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었다.
동생은 암이 나았다고 들떠 있었지만, 일시적이라는 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두사람을 부모님도 친척도 아무말 없이 지켜보았다.
봄, 동생이 3번째 의식불명에 빠졌다.
엄청난 고통에 못 이겨 아이같이 울부 짖는 동생을, 그녀와 동생의 어머니가 몸을 꾹 누르며 껴안았다.
"여기 있어, 혼자가 아니야"
그녀는, 죽음의 격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에 키스하며, 손과 발을 어루만졌다.
의사가 사망진단을 내리고, 유체가 집에 이동 할때까지도 그녀는 동생을 껴안고 있었다.
뭔가에 씌인듯이 오열하는 그녀를 보며 "사람을 사랑한다" 라는게 이런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친척의 접객, 경야, 장례식에도 나오지 않았다.
매년, 사촌동생의 성묘에는 참석하였다.
동생이 죽고 수개월 후, 일하고 있었던 회사에서 그만뒀다는걸 들었다.
수년이 지나곤, 성묘에도 오지않게 되었다.
최근, 그녀가 결혼하여, 한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들었다.
섭섭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