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 할 까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 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커티스 시튼펠트 <사립학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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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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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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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라만 봐도 나는, 사랑이다.
박진성 <연못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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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이은규 <바람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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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모든 게 크고 멋진 일이지만
나중엔 그런 것들도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거라고
쓸쓸히 말하던 사람도 있었지.
김이강 <마르고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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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 혹은 먼지 같은 날들,
생이 마냥 누추해지는 한 시절이 있다.
엄원태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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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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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해변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타오르는 해변이 슬프다는 생각으로 변해가는 풍경,
우리들의 잡은 손안에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걷고 있었다.
황인찬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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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서혜진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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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걸어놓은 교복은 빠르게 말라가고
또 보다 많은 것들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인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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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다, 떨어진다. 우리는 낙하하는 많은 것들을 좋아했다.
눈, 비, 안개, 나뭇잎, 햇빛, 깃털, 이를테면 구름 혹은 우리 자신.
김유진 <눈은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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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아저씨가 안 오는 날도 너에게 오는 편지가 있단다.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 뜰에 내려앉은 민들레 솜털
배고파 헤매는 들고양이 소리도쓰레기 모으는 사람 이마의 땀도
모두 편지란다.
읽으려고만 한다면.
스즈키 도시치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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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박정대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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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지
점등 별 망루에 올라 잠시 스위치를 켰을 뿐
그래, 그래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
김요일 <애초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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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꿈에서 보고
낮에는 추억에서 볼까?
*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윤동주 <못 자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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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졸업사진 배경에 찍힌 빨간 뺨의 아이가 나였다든가
내 어깨에 떨어진 송충이를 털어주고 갔던 남학생이 너였다든가
혼자 봤던 간디 영화를 나란히 앉아 봤다든가
한날한시 같은 별을 바라보았다든가
네가 쓴 문장을 내가 다시 썼다든가
어느 밤 문득 꿈을 꾸다 깼다든가
정끝별 <끝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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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누워 밤하늘에 별을 헤아렸다.
너는 여섯 개의 별을 나는 열열개의 별을 헤아렸다.
너는 보지 못한 네 개의 별을 아쉬워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하늘이었다.
엄태용 <같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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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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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구석이 찢어졌구나.
아픈데도 말 한마디 없었어?
삶이 그 보다도 아팠나보다.
이리와, 따뜻한 문장에 그은 밑줄을 가져다가
다친마음을 꿰메어 줄게.
울음이 새벽보다 이르게 시작되는 날이 많아졌어,
무엇이 이렇게 너를 강이 되어 흐르게 하니.
우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네가 울음을 쏟는 동안
나는 녹음된 빗소리가 될게.
내가 더 젖을게.
서덕준 <따뜻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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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서덕준 <도둑이 든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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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푸르른 노랫소리를 사랑할게.
청춘이니 꽃이니 하는 너의 붉음을 지켜줄게.
새벽에 못 다 혜던 너의 우울한 보랏빛도.
전부 별처럼 빛나게 해줄게.
서덕준 <장밋빛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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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바다에서 물놀이 하고 돌아온 날 밤
잠자리에 들어도 여전히 몸이 파도에 일렁이는 느낌
한낮의 해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아도 태양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식으로 너는 늘 내 안에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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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얘기해줘. 더 듣고 싶어.
너를 무척 좋아하니까.
너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싶어.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필립 로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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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고 스쳐 지나갈 수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삶이 정녕 고맙다고.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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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필립 로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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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곳곳에 대못질을 했다.
아빠는 내가 못을 박은 곳마다
나의 사진을 말없이 걸어놓곤 하셨다.
서덕준 <사진 보관함>
*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아도 죄는 죄일까.
깨지 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정끝별 <묵묵부답>
*
말만 해, 이번엔 뭐가 필요해?
내 마음?
아니면 내 목숨?
서덕준 <직녀 교향곡>
*
어느 날 나는 나의 영혼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사, 랑, 해
너무 떨려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며
한 음절씩 끊어 말했다.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꾸 짖었다.
황인찬 <오수>
*
하지만 우리는 열일곱
사랑을 받지 못해 주는 방법도 느리게 배우던 우리에게
첫사랑은 봄바람이라기보단 태풍 같았지.
전삼혜 <소년 소녀 진화론>
*
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
전삼혜 <소년 소녀 진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