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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대라는 문법
게시물ID : lovestory_815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5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18 22:25:42

사진 출처 : https://moortin.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XpVgsZ13ALA





1.jpg

윤주상

 

 

 

우리가 이 별 저 별 하듯이

너희도 이 인간 저 인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가 너희더러 반짝인다고 말할 때

너희도 우리가 몸부림친다라고 표현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오리온좌 카멜레온좌 카시오페아좌 등으로

쓸데없이 우리가 너희를 갈라 놓았듯이

너희는 우리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우는 자와 웃는 자 오른쪽과 왼쪽 남과 북 등등으로

늬들보다 더 복잡하게 갈라져 있음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별이여

나는 알 수가 없구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고

우리가 너희를 노래하는 밤에도

왜 너희는 결코 우리를 노래해 주지 않는지를

 

너희가 가장 밝게 빛나는 밤에

우리는 이 땅의 가장 어두운 길을 가고 있음을

별이여

너희는 과연 알기나 하는 일인지







2.jpg

이정록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둔 뿌리에는 눈물처럼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 가슴구름에 젖는 깃들 때문에







3.jpg

한정원그대라는 문법

 

 

 

바퀴 없이 굴러가는 풍경들

편집 되지 않고 돌아가는 느와르 필름들

에스컬레이터의 멈춤 표시를 누르자

조각난 풍경들이 관성의 힘으로 쏟아진다

너는 오늘 두 번이나 이곳을 지나쳤지만

처음처럼 첫눈처럼 첫가을처럼 내리지 못했다

과거완료와 미래형뿐인 네가 현재가 되는 장소

찔레꽃 그물망 붉은 담장 아래

오후 한 시와 네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무럭무럭 자라고

이십 년 걸려 나를 이해한 시간들은

동쪽에서만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칠월의 태양처럼 확실하게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너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나의 긍정이 불투명한 부정이 되고 만다는 것

나의 언어에서 그러나를 빼면

무엇이 생길까

너를 부르기 위해 평화를 스물한 번

미래를 열한 번 중얼거린다

 

전지를 끝낸 쥐똥나무가 무빙 워크로

강변 쪽 토끼 굴로 이동한다

지평선을 긋고가는 에스컬레이터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지워버려야지

 

푸른 동맥을 짚으며 햇살을 따라가는 의문들

뼈를 보일 수 있을 때만 나타나는

나의 감옥 속 바퀴

오후 두 시와 다섯 시

마술사의 시간처럼 향기를 달고 굴러간다

 

너는 오늘 두 번이나 이곳을 지나쳤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그래

처음엔 이름을 잊는다

다음엔 얼굴을 잊는다

그리고 너라는 습관을 잊는다







4.jpg

허혜정밤의 스탠드

 

 

 

이 아름다운 스탠드는 우리가 고른 것이다

작은 유리구슬을 당기기만 하면 부드러운 빛이 퍼진다

텅스텐 필라멘트처럼 위태롭게 깜빡이며

잠옷 위로 흐린 그늘을 만드는 빛

벽 위에 어슴프레 번져가는 그림자의 금

하나의 시공간에 엄연히 두 개의 삶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

하긴 어떻게 두 사람이 다 만족하는 사랑이 있는가

나날의 타협으로 쌓아올린 흐린 유리성

두 개의 상처를 이어 붙인 솔기처럼

하나의 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밤의 불빛 속으로 다가오는 피로한 얼굴

한 사람은 곯아떨어지고 한 사람은 깨어 있는 침대

이상한 슬픔이 몰려오고 갑자기 섬뜩하도록 차가운 정적

집이 텅 빌 때 느껴지는 그러한 정적

사랑누가 그 처음의 뜨거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서서히 식어가며 함께 누워 있는 욕조처럼 편안해지는 것

그리고 창백한 타일 위에 고여 있는 물방울처럼

싸늘하게 말라가는 외로움

사랑을 끝내기는 힘든 일이다

어쨌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상한 그늘 아래 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생활 그렇게 사실적인 그렇게 정확한

마시고 먹고 대화하는 식탁의

그 침대의

그 불빛의

그 외로움의 그늘 아래







5.jpg

이영춘노자의 무덤을 가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보았다

한 줌 바람으로 날아가는 사람을 보았다

 

지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상은 빈 그릇이었다

 

사람이 숨 쉬다 돌아간 발자국의 크기

바람이 숨 쉬다 돌아간 허공의 크기

 

뻥 뚫린 그릇이다()의 그릇

 

살아 있는 동안 깃발처럼 빛나려고

저토록 펄럭이는 몸부림들

 

그 누구의 그림자일까

누구의 푸른 등걸일까

 

온 지상은 문을 닫고

온 지상은 숨을 멈추고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릇

 

빈 그릇 하나 둥둥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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