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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게시물ID : lovestory_813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2
조회수 : 5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06 21:31:56

사진 출처 : http://darling-with-no-prob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Ae8_9pk-o4





1.png

김남주고목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성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2.png

신경림동해바다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3.png

정호승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서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고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4.png

천양희단추를 채우면서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첫 연애첫 결혼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5.png

함민복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공포를 견디었을

바보 같이 착한 생명들아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이 공기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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