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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게시물ID : lovestory_813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51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3/05 21:19:20
사진 출처 : http://littlebirddiary.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2KtwHBpiO_8




1.jpg

체 게바라나의 삶

 

 

 

내 나이 15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2.jpg

윤재철창호지 쪽유리

 

 

 

유리도 귀했던 때

창호지 문에

조그맣게 유리 한 조각 발라 붙이고

인기척이 나면

그 유리 통해 밖을 내다보았지

눈보다는 귀가 길었던 때

 

차라리 상상력이 더 길었던 때

여백이 많았던 때

문풍지 우는

바람이 아름다웠던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아름다웠던 때







3.jpg

복효근어떤 나쁜 습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4.jpg

김사인별사(別辭)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5.jpg

배한봉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바람 몹시 찬 밤에

포장마차 국수집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예닐곱쯤 되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늙수그레한 주인이 한 그릇 국수를 내왔는데

넘칠 듯 수북하다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젓가락을 놓자 남자는

허겁지겁 남은 면발과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국수까지

국물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먹는다

 

기왕 선심 쓸 일이면

두 그릇을 내놓지 왜 한 그릇이냐 묻자 주인은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한 그릇 값 내고 한 그릇은

얻어먹는 것이 되니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포장마차 주인의 셈법이 좋아

나는 한참이나 푸른 달을 보며 웃는다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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