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미션스쿨에 다녔습니다. 성지중학교라는 이름을 쓰며 성지공고와 같은 재단이기도 하지요. 성지공고라고 하면 강만수와 강두태가 다닌 유명한 배구전문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약간은 우범지역의 동네에 위치한 까닭으로 학교의 수준은 그렇게 높지 못하였습니다.
하긴, 우리네 교육정책 같이 성적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면 성지중학교는 가장 바닥권의 학교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션스쿨, 즉 기독교를 교육이념으로 하는 학교였지요. 수요일 오전엔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배를 보았고, 일주일에 한시간씩 성경시간이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전용(?) 목사님이 계셔서 수요일 예배와 일주일 한번 있는 성경시간을 책임지셨죠. 성격성적이 생활기록부에는 올라가지 않지만 우리들에게는 꽤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평균 90점 이상이면 수여하는 우등상에서 성경성적이 90점 이상이 안되면 상을 주지 않았으니깐요.
그래서 불교를 믿던 회교를 믿던 성황당 고목나무를 믿던 우등상을 받을려는 놈이면 누구든지 성경공부를 하여야 했습니다. 저는 태어날때부터 교회를 다니는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예수님을 당연히 믿어야 하는걸로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지만, 그당시 주위 친구중에는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성경공부를 시키는것에 불만을 가진 친구는 아주 많았습니다.
오늘은 그 성경공부 그리고 목사님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계신 전용(?)목사님을 교목이라 불렀는데, 우리가 다니는 시절에 계신 교목은 아주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데 나이가 아마 지금의 제 또래였지 않나 생각되는데... 키는 자그마하지만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화끈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많았지요. 또한 성질이 무척이나 급하셔서 화가 나면 손부터 먼저 나가는 그런 분이기도 했습니다. 무척 보고싶습니다. 지금.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왜 지금 보고 싶은지...
중학교 2학년이면 수학여행을 가지요. 부산지역에 사는 중학생들은 경주지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그때의 그 재미남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의 수준차가 극명한 지역의 학교이다 보니 반에서 약 10여명 정도는 수학여행을 갈수 없습니다. 통상은 말이지요.
가정형편이 무척이나 어려운 친구들인데.. 그런 친구들 중에 보통은 약간 불량스런 친구들도 있고, 조숙하게 담배를 피는것은 예사이고 심지어 가출하여 동거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읍니다. 사실 중학교 2학년이지만 나이로 치면 고등학생인 아이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는 한명도 열외없이 수학여행을 다 갈수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지 못한 친구들도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모조리 갈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슬슬 피하고 무서워 하던 그 친구들도 수학여행에 가서는 얼마나 즐겁고 재미나게 놀든지.. 그리고 우리들에게 얼마나 살갑게 대해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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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여전히 정현주 목사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사님과 달리 성경수업시간에 엄격하시었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예의에 벗어나면 가차없이 꾸중을 하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불량 아이들도 호시탐탐 목사님을 골탕 먹일려고 준비를 하곤 했습니다. 수요일 전체 예배 시간에 일부러 소란하게 하는가 하면 기도중에 방귀를 낀다든지 큰소리로 웃는다든지 하면서 말이죠.
한번은 너무나 화가 난 목사님이 한명의 학생을 불러다가 꾸중을 하는데 키가 한뼘이나 더 큰 이 학생이 근들근들하며 희죽희죽 웃은적이 있습니다. 니 까짓게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냐 하는 그런 투였지요.
한 동안 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시던 목사님.. 성경책을 들고 조용히 나가시더군요. 당시에 종교부장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맡고있던 나는 얼른 목사님을 뒤따라 가보았습니다. 교목관에 들어가신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성격책 위에 손을 모으시고 기도하시더군요. 너무 너무 화가 남을 이기지 못한듯 입술을 꼬옥 깨물고 말입니다. 여러번 아주 여러번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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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정현주 목사님은 우리의 교목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일화를 하나 말씀하시더군요. 졸업식장에서 말입니다. 2년전 이번 졸업기수의 수학여행때, 학교 개교 이래 단 한명의 열외자 없이 수학여행을 갔다 온것을 이야기하며 그때, 수학여행을 못가는 학생들을 도와준 사람을 말씀하셨습니다.
정현주 목사님이라고 하시더군요. 당신의 한달 월급을 모조리 털어 전혀 내색없이 아이들이 즐겁게 수학여행 가는데 써라고 내놓았다는 겁니다.
나는 그때 비로소 큰 사람을 느꼈습니다. 졸업당시의 나보다도 키가 한뼘정도 작은 목사님. 하지만 진짜로 큰 사람임을 느꼈습니다. 진짜로 큰사람. 정현주 목사님.
오늘 너무 말이 길어졌군요.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더 뒤로 미루어야 겠습니다. 나중에 들은 에피소드는 참으로 믿을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