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공기가 온몸을 떨게 만드는 오늘입니다.
예전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다닌 시절,
매일매일 출근길에 만나는 얼굴이 있었는데,
내가 걸어오는 방향과 반대방향에서 항상 그 시간에 멍하게 걸어오는 한 노인..
머리를 빡빡 깍고서, 짧디 짧은 담배 한개피를 손가락에 끼우고서,
추워보이는 겉옷차림으로 내 옆을 스쳐지나는 얼굴...
그때 마다 나는 불쑥 불쑥 아버지의 생각을 하였답니다.
대학시절 경제사범으로 아버지가 감옥에 간적이 있습니다.
경찰의 구치소가 아닌 정식 교도소메 말이죠.
당뇨병의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80키로가 넘던 몸무게가 60키로 정도로 줄고,
제법 까뭇까뭇하던 머리의 체모도 많이 빠졌을 때였습니다.
어릴적,
항상 가족들에게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를 보여주시던 아버지가,
1년 가까이 부산의 주례구치소와 김해교도소 생활을 하였는데,
다른 부분은 몰라도 먹는 부분에서,
그 입맛 까다로우신 양반이 어떻게 그곳 생활을 용케 버텼는가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식 이상한 생각이 든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감옥이란 곳이 그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에 많이 알게되었는데,
면회를 갈때마다 돈을 넣어야하고, 음식을 넣어야 하고,
내의를 넣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곤 했습니다.
영어의 몸으로 꼼작달싹 할수 없게 한다는 것.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라는 자유에의 족쇄를 채워놓고서,
의.식.주의 해결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대한민국..
(요즘은 조금 틀린가요?)
그나마 경제사범이라는 이유로,
약간의 격리된 죄수들과 생활을 하였던 모양인데,
소위 말하는 폭력관련 수감자들에겐 폭행과 가혹행위가
비일비재 하다고 하더군요.
5분여 간의 면회시간이 주어지면 아무 할말이 없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족들.
그나마 구치소에 계실때는 매일 매일의 면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먼 길을 두어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여를 가서,
매일 매일의 면회를 신청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2시간, 혹은 3시간의 면회 대기시간후에 주어지는 5분여 시간.
이 치졸하고 옹졸한 큰아들은 그 대기시간에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한달에 두어번의 면회에도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유리창 너머로 보인 아버지를 보고서,
순간 목에 팥빵이라도 걸린듯. 아무 말을 못했던 처음의 면회.
공부 잘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던 당신의 목소리에,
서글픔과 아픔이 묻어남을 느꼈기에,
더더욱 당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었습니다.
어색함을 달래려 괜히 유쾌한듯 허허~ 웃으시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워,
나와 작은누이는 그만 당신의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답니다.
하루의 24시간중에 오직 가족이 찾아오는 5분을 기다리며,
새벽의 눈뜨임과 밤의 눈감김을 생각한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전해듣고서 유난히 눈물많은 큰누이는 하루종일을 울고..
그렇게 재판을 기다리며 구치소 생활을 하다..
어느날 면회를 갔다오신 어머니가,
그 조그만 얼굴에 가득담긴 수심을 숨기지 못하는데..
김해 교도소로의 이감이 결정났다며.. 그말을, 그말을,
나에게 못해 말을 돌리는 어머니.
아무것도 모른 이 무심한 큰 아들은,
아~ 면회 갈곳이 조금 더 멀어졌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만 했으니...
후에 알고보니, 교도소로의 이감은 잦은 면회를 허용치 않는다더군요.
겨우 일주일에 한번, 혹은 이주일에 한번 정도..
그리고 반드시 머리를 짧게 깍이우고..
스산한 11월의 계절..
김해 교도소로 이감되신 아버지는,
얼굴 가득 담긴 걱정의 표정으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 없는 숱의 머리카락을 바리깡으로 짧게 밀고서,
멋적은듯이 웃으시는 아버지.
머리카락이 없으니 시원하다~.. 하시는데...
오늘, 인생의 중간에 선 아들의 머리속에 자꾸만 자꾸만,
그때의 아버지 얼굴표정이 떠오릅니다.
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
박박 깍이운 새파란 머리...
차가운 아침공기에 총총 걸음으로 출근하던 내눈에 비친,
어떤노인의 모습..
아버지와의 환영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
........
아버지, 오래 사십시오.
되도록이면 오래 사십시오.
당뇨병과의 합병증으로 찾아든, 이 지긋지긋한 중풍을 이겨내시고,
되도록이면 오래 사십시오.
내 아들이 나의 얼굴표정을 가슴속에 묻어둘 그날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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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2001년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던 한편의 글입니다.
우연히 뒤적거린 컴퓨터 하드의 한 폴더안에 있더군요...
내 아들이 나의 얼굴표정을 가슴속에 묻어둘 그날까지...
오래 오래 사시라고 끝말을 맺었던지가 겨우 몇일전 같은데...
당신은 남겨진 식구들에게
그 무거운 병마의 몸이 짐으로 보여지기 싫었던지,
급히 실려간 병원에서
단 6시간 만에 세상을 등졌었습니다.
이 옹졸한 큰 아들에게는
아련히 흔들거리는 뒷모습만을 남겨둔채 말입니다.
아버지,
왜 저에겐 저를 변명할 시간을 주지 않으셨는지요...
어느새 인생의 깊은 시간을 꽤 살은 이 아들에게,
꿈속에 보여진 너무나도 또렷한 아버지의 뒷모습 탓에,
흔들 흔들 거리며 방문을 여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탓에,
오늘 아침, 눈을 뜨고선..
그냥 그냥...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