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예전에 내가 엄마랑 싸우고 한동안 연락안했을때 기억나?
그때 있잖아 나는 완전히 다른사람이 됐어.
아니아니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이 됐다구.
있지. 엄마 딸 김혜정은 그때 죽었어!
그것도 내가 죽였다. 놀랐지.
장난치는거 아닌데? 장난같아 보여?
한 20년 됐나. 우연히 지갑을 하나 주웠거든.
돈만 빼고 버렸으면 됐는데, 그냥 궁금하잖아.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몰래 본다는게 생각보다 짜릿하거든.
그렇다구 별게 있었던건 아니구 현금 몇만원, 영수증, 민증, 학생증, 남자친구랑 같이 찍은 사진?정도.
근데 또 그게 보다보니까 궁금해지더라구. 지갑너머로 보이는 이 아이는 실제론 어떤 삶을 살고있을까 하구 말야.
처음엔 호기심이었어. 그냥 학교앞에가서 무작정 기다렸지. 근데 혜정이는 사진빨이 좀 심하더라!
남자친구 보고 알아봤지 뭐야. 남자친구가 완전 내 이상형처럼 생겨서 첫눈에 보고 반했었거든.
아무튼 며칠좀 지켜봤는데 말이야. 혜정이는 정말 부러운 삶을 살고 있더라구.
내가 원하는 학교, 학과, 잘생긴 남자친구, 화목한 가정과 유복한 경제사정.
근데 그때 내가 좀 힘들었거든. 조금이 아니구나, 그때도 아니구.
나는 늘 정말 힘들게 살았거든. 있잖아 나 고아야. 부모얼굴도 모르는. 고아원에선 학대도 당했었고.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뛰쳐나왔을때 처음 훔친게 혜정이 지갑이었어. 주웠다고 그랬었나? 어쨌든말야.
그때 훔친 돈도 다쓰고 정말 배고팠는데. 문득 지갑이 정말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지더라구.
나는 연기자가 꿈이었어! 티비에 나오는 이쁜 배우들 보면 그렇게 부럽더라.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혜정이를 연기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기했던게 우리둘이 생긴게 누가 보면 헷갈려할 정도로 비슷했었거든.
머리 스타일이나 피부상태나 그런건 달라도 눈매나 입이나 코나 체형은 진짜 비슷했어.
이런게 운명인가 싶더라. 그리고 혜정이는 지금 자기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건지 잘 모르는거 같기도했고.
그래서 내가 그냥 김혜정 하기로 했어.
생활패턴이나 습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같은건 매일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걸로 됐는데,
얘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알아내기 힘들더라구.
그래서 왜 그때 있잖아 그때. 엄마한테 엄청 화내는 문자 보냈을때.
그거 실은 내가 보낸거였어.
그렇게 어렵진 않더라구.
한사람의 일생을 전부 듣는건 딱 일주일이면 충분했어.
아니, 그 사람이 스스로 말하고자 한다면 훨씬더 적게 걸리겠다.
혜정이가 내 계획을 눈치챘는지 뭔지 자꾸 거짓말을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아는 사실이랑 다른 말을 할때마다 손톱을 뽑았어.
세개 정도 뽑고나니까 그뒤론 사실만 말하는거 같더라.
근데ㅋㅋ 나중에 손톱은 다 뽑아버렸어.
그 고통에 가득찬 혜정이 얼굴이 너무 아름답더라.
그리고 혜정이는 죽었어. 내가 죽였다고 해야하나. 근데 죽이려던건 아니었어.
이를 뽑으면 그렇게 피가 많이 나는지 몰랐거든. 내가 치과의사도 아니고 말이야.
자고 일어나니까 차가운게 죽은거 같더라. 그때 정말 죽은건지 기절했던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죽여야했으니까. 김혜정이 두명인건 이상하잖아.
자르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래도 참 보람있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혜정이는 대서양 태평양 바다 안가리고 골고루 퍼졌을거야.
엄마 울어? 왜울어? 나 결혼할때도 안울었으면서.
왜 울고그래 바보같이. 달라진건 하나도 없어. 어제랑 오늘이랑.
왜? 누구한테 말하려구?
근데ㅋㅋ 엄마 치매걸렸잖아. 아무도 안믿을걸?
어머 내정신좀 봐. 밥 다 됐겠다. 기다려. 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댔잖아!
오늘 반찬은 내가 좋아하는 장조림이야. 근데 실은 나 장조림 별로 안좋아해ㅋㅋ 짜서.
그래도 맛있게 먹을게.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