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별은 다정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1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7
조회수 : 5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27 20:29:24

사진 출처 : http://pixelmebro.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eI8wFEQ_Th0





1.png

고영민황홀한 국수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렇게 말아

그릇에 얌전하게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에 젖은 땀을 문지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2.jpg

고재종동안거(冬安居)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3.jpg

신경림숨막히는 열차 속

 

 

 

낯익은 사람들이 한둘씩 내린다

어떤 사람은 일어나지 않겠다 버둥대다가

우악스런 손에 끌려 내려가고

어떤 사람은 웃음을 머금어

제법 여유가 만만하다

반쯤 몸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바깥은 새까맣게 얼어붙은 어둠

열차는 그 속을 붕붕 떠서 달리고

 

나도 반쯤은 몸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땀내 비린내로 숨막히는 열차 속

새 얼굴들과 낯을 익히며 시시덕거리지만

내가 내릴 정거장이 멀지 않음을 잊고서







4.jpg

양애경별은 다정하다

 

 

 

집에 돌아오며 언덕길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일을 하면서

반짝반짝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내가

혼자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눈에 닿는 별빛이 몇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든지

그 별이 이미 폭발하여 우주 속에 흩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든지

보이저가 가보니까 토성의 위성은 열여덟 개가 아니라

사실은 스물한 개였다든지

그런 걸 알아도 그렇다

 

오히려 나도

다음 생에는

작은 메탄 알갱이로

푸른 해왕성과 얼켜 천천히 돌면서

영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좋겠다 싶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가운데 내려놓는 여자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5.jpg

김동준가벼운 농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좋겠어

뻐꾸기 울어대는 산골이면 좋겠어

마루가 있는 외딴집이면 좋겠어

명지바람 부는 마당에는

앵두화 속절없이 벙글고

따스한 햇살 홑청처럼 깔린 마루에는

돌쩌귀처럼 맞댄 아랫도리 열불 나고

뻐꾸기 소리인지

곰팡이 슨 목울대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모를

신음소리에 놀라

장독대 옆 누렁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대로 마루에 벌렁 누워

아지랑이 몽롱한 한나절

늘어지게 낮잠 자면 좋겠어

그렇게

가벼운 농담처럼 사흘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