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물에게 길을 묻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울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흘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김수영, 눈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용혜원, 삶의 아름다운 장면 하나
그대에게
기억하고 싶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고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은
삶의 아름다운 장면
하나 있습니까
그 그리움 때문에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용기가 나고 힘이 생기는
삶의 아름다운 장면 하나
김명수, 발자국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
정현종,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
자기를 벗어날 때처럼
사람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