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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게시물ID : panic_684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왕양명
추천 : 41
조회수 : 300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5/31 03:39:29
나는 어려서부터 단풍을 참 좋아했었다. 내가 어찌나 단풍을 좋아했는지 가을에는 항상 붉게 물든 거리를 사슴처럼 뛰어다녔고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울상을 짓기까지 했다고 부모님께서는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런 나를 위해서 우리집은 마당이 딸린 집을 구했고 마당에는 엄마나무 아빠나무 내나무 이렇게 세그루의 단풍나무를 심어두었다.

때문에 매년 가을 나는 좋아하는 단풍을 즐길수 있었다. 떨어지는 단풍잎을 치우는게 귀찮았어도 단풍을 보는 행복이  더욱 컷기에 단풍나무들은 내 보물 1호가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 그 집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었고 군대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내 보물이었던 단풍나무는 내가 없이 혼자 단풍을 뽐내고 단풍을 떨구게 되었다.

내가 상병이 된 후에 1차 정기휴가를 나가기로 휴가를 계획했고 아쉽게도 휴가의 일자는 겨울로 나는 우리집의 단풍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때문이었는지 나는 휴가 한달 전부터 계속하여 단풍나무에 대한 꿈을 꾸게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항상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빨리 와라 내가 단풍을 잡아놓았다"라고 말씀하시는 조금  이상한 내용의 꿈이었다.
  
그리고 휴가예정일 일주일 전 나는 행정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전화의 내용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지금 당장 휴가를 나가 장례를 치루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충격을 느꼈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휴가를 나오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폐암이셨다. 나는 몰랐는데 어머니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눈치였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내가 군대에 들어가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이상을 느끼셨고 병원에 갔을 때 이미 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러나 혹여나 내가 그런 사실로 군대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나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신병휴가때 나와서 부모님과의 시간을 뒤로 미루고 친구들만 찾아다닌 것이 생각나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나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낚시를 가자고 했을 때 같이 갔었다면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 대신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셨다면...진작 아버지와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은 후회일 뿐 아버지는 이미 먼 길을 떠나셨고 내가 아버지를 느낄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진을 통해서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대문을 넘어 집에 들어온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붉은 단풍이 나무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실상 낙엽이 떨어졌어도 진작 떨어졌어야 정상인 계절이었으나 집안의 단풍나무는 밖에 눈이 수북히 쌓여있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고고히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예쁘제? 느그 아부지가 너 휴가나오면 보여줘야 된다고 그렇게 안절부절하더니 한겨울에도 저렇게 나무가 단풍을 붙잡고 있단다"

어머니는 말씀을 하시고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내 흐느끼기 시작하셨다.

"아이고 이 양반아...조금만..조금만 더 버티지 뭐가 급해서 그리가셨소....이 양반아...여기 그렇게 단풍 같이 볼거라던 아가 왔는디..."

나도 붉은 단풍을 바라보다보니 이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단풍은 어릴적 내가 좋아했던 붉은색채를 지니고 있었고 바닥에 쌓인 흰색의 눈과 대비되어 더욱이 아름답게 보였다.

나와 어머니가 한참동안이나 단풍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 단풍은 천천히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단풍은 지금까지 붉은빛을 유지하느라 온 힘을 다한듯 땅에 닿음과 동시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 사라져버렸다.

마치 꿈결과 같은 그런 장면속에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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