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발작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 이거
우주 기적 아녀
신동엽,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이순신,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水國秋光暮 수국추광모
驚寒雁陳高 경한안진고
憂心轉輾夜 우심전전야
殘月照弓刀 잔월조궁도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활과 칼 비추네
이성선, 몸은 지상에 묶여도
한밤 짐승이 되어 울까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광야에 웅크려 하늘을 본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
마음은 하늘에 살아야지
이 가지 저 가지를 헤매며
바람으로 울어도
영혼은 저 하늘에 별로 피어야지
절망으로 울던 마음 그 가난도
찬연한 아픔으로 천상에 빛나야지
광야에 웅크려 다시 하늘을 본다
마음 잎새에 빛나는 별빛이어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울까
조은, 골목 안
실종된 아들의 시신을 한강에서 찾아냈다는
어머니가 가져다준
김치와 가지무침으로 밥을 먹는다
내 친구는 불행한 사람이 만든 반찬으로는
밥을 먹지 않겠단다
나는 자식이 없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더구나 자식을 잃어보지 않아서
그 아픔의 근처에도 가볼 수가 없다
웃을 줄 모르는 그녀의 가족들이
날마다 깜깜한 그림자를 끌고
우리집 앞을 지나간다
그들은 골목 막다른 곳에 산다
나는 대문을 잘 열어두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우리집에 와 울다가 간다
오늘처럼 친구가 와 있을 때도 있지만
얼마 전 가족을 둘이나 잃은 독신인 친구에게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멀고 낯설어 보인다
고통에 몸을 담고
가쁜 숨을 쉬며 살아온 줄 알았던 나의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소멸한
슬픔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