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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게시물ID : lovestory_81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10 22:25:56
사진 출처 : http://existent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1HMzfPA5VuQ




1.jpg

신용목노을 만 평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끝날까지 사슬 끌려도

노을 만 평 사다가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







2.png

이준관구부러진 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볕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사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3.jpg

이한직시인은

 

 

 

한 눈을 가리고

세상을 간다

 

하나만 가지라고

구슬 두 개를 보이던 사람에겐

옥돌 빛만 칭찬하고 돌아서 왔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빙그레 웃어만 보이련다

남루(襤樓)를 감고 거리에 서서

마음은 조금도 번거롭지 않아라








4.jpg

오광수, 12월의 독백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5.jpg

문정희나무 학교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 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 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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