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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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넣는다
허영자, 무지개를 사랑한 걸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에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것 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 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고형렬, 산머루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백창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 없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내 안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나 가벼워질까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단하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한 걸음 내 디디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 한다
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안개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가벼워져
길이 끝나는 데까지 가 봤으면 좋겠다
정희성, 숲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