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318210604497
1948년 3월 5일자 '평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육당 최남선
"나에게는 나의 신조가 있어 행동하였고 그러하기에 근본적으로 인간 최남선이가 참회를 한다는 것은 곤란한 문제이올시다.
참회할 만한 대역·대죄도 범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의 행동 전체가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학병 권유에 대해
"만약 그날(해방)이 오게 되면 실권을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니
젊은 청년 다수를 학병으로 보내 군사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찬성했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도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3·1운동을 민족윤리운동으로 체득하고 그 실천을 위해 문안을 기초한 것인데, 그 운동이 내 의도와 달리 정치운동으로 진전됐다.
거족적 민족윤리운동에 기독교나 천도교가 나서 주도해가는 경향이 농후해 서명을 거절했다"
"문안은 내가 기초했으나 결코 그 운동으로 민족자결이 실현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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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나오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