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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게시물ID : lovestory_809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4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02 22:32:31

사진 출처 : http://youcan-bethebest.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jimgkH5inhU





1.jpg

유안진홀림

 

 

 

문득 너무 오래 사람이었구나

아장걸음 걸어오는 새벽 봄비에

미리 젖어 촉촉하게

사람 아닌 무엇이고 싶구나 오오랜만에

 

산짐승의 어린 새끼

외따로 눈을 뜨는 초목의 첫싹같은

풋것이 약한 것이 고운 것이 되어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 구경에

놀라 넋이 빠진 오줌싸개라도

 

여름 폭풍우 아니면 겨울 눈보라였던 과거에서

그 무슨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버러지라도

그 눈망울 속 무한 숙맥이고 싶구나







2.jpg

파블로 네루다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푸른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3.jpg

이해인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4.jpg

나희덕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5.jpg

정현종경청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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