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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게시물ID : lovestory_809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7
조회수 : 6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30 23:55:37
사진 출처 : http://paranoia-in-a-bathtub.tumblr.com/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okPz4



1.jpg

김명인의자

 

 

 

창고에서 의자를 꺼내

처마 밑 계단에 얹어놓고 진종일

서성거려온 내 몸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와서 앉으렴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때로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어둠을 주인으로 섬기기도 했다

마른장마에 잔비 뿌리다 마는 오늘

어느새 다 자란 저 벼들을 보면

들판의 주인은 바람인가

온 다리가 휘청거리면서도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는 것은

그 무게로 벼를 익히는 것이라 깨닫는다

흔들리는 생각이 저절로 무거워져

의자를 이마 높이로 받들고 싶어질 때

저쪽 구산 자락은 훨씬 이전부터 정지의 자세로

지그시 뒷발을 내리고 파도를 등에 업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 어떤 안식이 있느냐고 네가

네 번째 나에게 묻는다

모든 것을 부인한 한낮인데 부지런한

낮닭이 어디선가 길게 또 운다

아무도 없는데 무엇인가 내 어깨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힘겹게 흔들린다







2.jpg

기형도엄마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내 유년의 윗목







3.jpg

최영미행복론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고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4.jpg

강윤후성북역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5.jpg

문태준엽서

 

 

 

바람이 먼저 몰아칠 것인데천둥소리가 능선 너머 소스라친다

이리저리 발 동동 구르는 마른 장마 무렵

내 마음 끌어다 앉힐 곳 파꽃 하얀 자리뿐

땅이 석 자가 마른 곳에 목젖이 쉬어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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