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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토 - 요즘에는 CG라도 있지..
게시물ID : history_8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insiedler
추천 : 15
조회수 : 1429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03/18 18:04:13

일기토(一騎討)란 단어는 일본어에서 건너온 것으로 흔히 삼국지 소설이나 여러 게임을 하다보면 대장들끼리 1:1로 현피뜨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정확히는 말을 탄 무사가 1:1로 싸우는 걸 말하는데 우리말에는 사전에 이러한 결투를 표현하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각설하고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여러 고전기서나 영웅담이 낳은 폐혜 중 하나가 일군의 수장급 장수라면 당연히 무용이 뛰어나고 일기당천으로 잡졸들 쓸어버리고 다니는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고 할까요. 실제 전장에서 부대를 이끄는 장수의 역할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전황을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휘하부대를 배치하고, 부하들을 독려하여 전투에서 이길 수 있게 만드는 역할입니다. 앞에 나가서 서로 육체언어를 나누는 일은 밑에 있는 병졸들이나 혹은 최일선에 나가서 싸우는 하급 지휘관들의 역할이죠.

이러한 수장급 장수들 사이의 1:1 전투나 일기당천으로 모두 쓸어버리는 유형의 전쟁양상이 묘사된 이유로 당시 병사들이 백성들을 필요에 의해 징집한 것이라 퀄리티가 안습이었기 때문이다란 식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삼국지 시대의 군제는 세병제입니다. 세병제는 호적을 병적, 민적, 이적으로 나눠서 병적으로 등록된 백성들이 병역의 의무를 지는 시스템입니다. 한 마디로 "너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병사 계급"이란 카스트를 설정한 겁니다. 이러한 병사 카스트는 일정한 지역에 뭉쳐 살면서 둔전에서 농사짓고, 주기적으로 훈련을 받고, 병사 카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끼리만 결혼하게 하고, 아버지가 복무만료되어 전역하면 아들이 입대하는 식으로 굴러갔습니다. 즉, 전문화된 병력동원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절대 전쟁나는 바람에 농사짓던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징집해서 끌고 가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묘사가 주를 이루게 된 것은 과거 역사 속의 영웅담 대부분이 "구전"이나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과거 중국의 대도시에는 대중들의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러한 과거 영웅담을 맛깔나게 각색해서 한 명이 판소리하는 것처럼 들려주거나, 혹은 요즘에 잘 알려진 경극과 비슷한 형태로 공연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 때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가장 큰 골치거리가 됩니다. 구전의 경우 말로 땜방쳐서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긴 하겠죠.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전투상황을 어떻게 다 묘사할까요? 공연으로 한다고 하면 애초에 동원할 수 있는 엑스트라 숫자에도 한계가 있는데 그 전투상황을 어떻게 묘사하겠습니까?

요즘이냐 CG로 때우면 되겠지만 그 시절엔 그런 방법도 없으니 선택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 대장급 인물의 무용담과 1:1 결투로 때워버린겁니다. 예를 들어서 2차 세계대전의 독소전쟁을 묘사한다고 하면 히틀러가 일당백의 기세로 소련병사들을 쓸어버리고 스탈린을 두들겨패서 궁지로 몰아넣었는데, 힘을 회복한 스탈린이 이번에는 히틀러와 독일병사들을 일당백으로 쓸어버리고 전투에서 이기는 것으로 묘사를 해버리는 겁니다. 실제 몇 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진행됐을 전투를 다 묘사할 수 없으니 핵심만 뽑아서 의도적으로 왜곡을 가하는 겁니다. 이러는 쪽이 공연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편하고, 관람하는 쪽에서도 이해가 쏙쏙 될 수 있죠.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무수한 단기결투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면 한중공방전 파트에서 그 유명한 황충이 하후연을 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후연은 황충에게 참수당한 것이 아니라 그냥 군대가 서로 맞붙어 싸우는 도중에 패배하여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공연에서는 이 장면을 황충이 나서서 하후연과 티격태격하다가 참수한 것으로 과장 및 왜곡을 가하는 형태가 된거고, 그게 소설화되면서 연의의 그 장면이 나오게 된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일기토 형태의 싸움이 아주 없었느냐고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닙니다. 과거 전장에서 양군이 마주치고 난다음 기선제압 및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단기결투를 벌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내보내는 인물은 무예가 뛰어난 하급장수를 챔피언으로 내세우지 상장이 직접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상장급 인물이 관우 수준의 용명을 날리는 인물이라면 직접 나가서 상대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타이틀 매치 전에 분위기를 띄우는 목적으로 하는 배틀일 뿐이지 실제 메인 이벤트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요약하면


 1. 장수들이 1:1로 맞붙어서 상대를 쳐죽이고, 혼자서 상대편 쳐바르고 하는 건 구전공연할 때 편하려고 가한 왜곡이다
 2. 예나 지금이나 지휘관이 똑똑하고 병사들이 잘 싸우는 쪽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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