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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우는 손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강연호, 저 별빛
그리움도 버릇이다 치통처럼 깨어나는 밤
욱신거리는 한밤중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지친다 더 이상 감추어둔 패가 없어
자리 털고 일어선 노름꾼처럼
막막히 오줌을 누면 내 삶도 이렇게 방뇨되어
어디론가 흘러갈 만큼만 흐를 것이다
흐르다 말라붙을 것이다 덕지덕지 얼룩진
세월이라기에 옷섶 채 여미기도 전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구겨버릴 테지만
지금은 삼류 주간지에서도 쓰지 않는 말
넘지 못할 선,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너에게
가고 싶다 빨래집게로 꾹꾹 눌러놓은
어둠의 둘레 어디쯤 너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마음은 늘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다가
문득 일행을 놓치고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는 것
저 별빛 새벽까지 욱신거릴 것이다
박재삼, 천년의 바람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정희성, 흔적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그림자만 남아있다
저승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2년인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이 보낸
체납 주민세 납부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화곡동 어디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