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밥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김충규, 울음의 힘
새는 뼈가 순하여
날개만 펼쳐도 쏜살같이 날아가지만
때로는 세찬 바람 앞에 저항하기도 한다
날개 관절이 뜨겁게 달구어져
더 날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새는 꺽꺽 울음을 쏟아낸다
혀를 입천장에 바짝 올려붙여
울음의 울림을 제 몸에 심으며
그 울음의 힘으로 십 리를 날아간다
마종기,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손택수, 외딴 산 등불 하나
저 깊은 산속에 누가 혼자 들었나
밤이면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불을 켜고 잠들지 못하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눈을 뜨고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외눈으로
하염없이 글썽이는 산
그 옆에 가서 가만히 등불 하나를 내걸고
감고 있는 산의 한쪽 눈을 마저 떠주고 싶다
한강,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