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이정하, 저물녘
잊으라, 그대가 말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님을
고개를 끄덕여야 했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님을
돌아서는 그대 등 뒤로
황혼이 진다
그 황혼의 나라로 함께 갈 수는 없을까
아무도 사랑을 할 줄 모르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곽재구, 별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류시화, 저편 언덕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정호승, 첫 키스에 대하여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바다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어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 않으려다 보지 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