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 말씀대로 길고 쓸때없고 정력낭비인 길고 긴 게시물을 참 이렇게 늘리는게 부끄럽습니다만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겠지요,
시간 내기가 참 애매해서 용두사미..라고 하기도 부끄럽게 글이 끝납니다만 앞서 목차를 달아가며 작성한 글에서 못다한 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앞 글에서 수없이 반복한 이야기이지만 환단고기는 말 그대로 패러독스 즉 역설입니다.
강단 사학자들의 음모로 우리의 역사가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역사찾기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주체하는 환단고기 북콘서트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인터넷과 현실의 추종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지 못하는 혹은 말하지 않고 넘기는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환국 문명에서 발굴되는 유적지입니다.
그 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철기 문명입니다만 저술된 동시기의 환국 문명의 땅에서 발굴되는 유적지들은 3301년을 생각하더라도 중석기 63182년을 생각한다면 구석기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농간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차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에서 추축국이 갈아넣은 장비는 75개 사단을 족히 무장시킬수 있는 양입니다. 그 들이 스탈린그라드라는 좁은 땅덩어리위에 부어내린 폭약의 양을 생각한다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지만 스탈린 그라드가 지워졌을까요?,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팻맨의 위력은 TNT 환산 21kt에 달합니다. 그러나 히로시마가 문자 그대로 그 이전을 생각할수도 없게 깔끔하게 지워졌을까요?
기원전 15세기 미노아 문명은 쓰나미에 멸망당했으며 1960년에는 하와이가 1755년에는 리스본이 쓰나미에 초토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사라졌을까요?
이렇듯 어떠한 지역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물자와 인력을 요구로 하는 엄청난 사업입니다.
하물며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의 땅입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나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기는 물론이거니와 현재까지 일본이나 중국 정부 차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이지요, 무엇보다 환국의 영토는 드넒습니다.
남북이 대략 2만 km 동서가 얼추 7,800km에 달하며 10여개가 넘는 연방국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는 해당 지역에 수많은 촌락과 도시가 있었을거라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거주 지역중에 왜 단 한곳도 환단고기의 주장대로 철기 문명 이상의 고대 국가를 가진 유적이 유물이 저술된 동 시대를 기준으로 단 한곳도 나오지 않을까요?
학계에서 부정하고 있다는 가설도 영 신통치 않은게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학계는 우리 나라의 구석기를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터라 함북 종성 동관진 구석기 유적 발굴 당시 철저하게 무시하고 부정했지만 학계에서 몰아낼수는 없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환국 문명을 부정할 필요성은 전무합니다.
환단고기에 따르자면 한국과 중국인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한 민족으로서 비록 식민 지배를 당하였으나 이후에 민족 의식이 고취되면서 스스로 떨쳐 일어나 치우 천왕에게 독립을 인정받은 민족으로서 한국인과 한반도 역시 자국 역사에 편입할 당위성이 충분한 자국 영토에 대한 역사 의식을 기반으로하는 동북 공정에 있어 매우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따지고 보자면 환국 문명보다 시급한것은 자국 문명의 기틀에 자리 잡은 한반도를 거쳐 전파된 문화입니다.
환국 문명에 의한 지배야 치우 천왕의 기록에서 볼수 있듯이 일본 서기와 마찬가지로 과장된 표현으로 얼마든지 짚고 넘어갈수 있지만 한반도를 통해 전파된 문화는 빼도박도 못하는 매우 현실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저술된 동시기에 발굴된 유적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해당되는 시대의 해당 되는 지역의 문명을 정확하게 짚어낼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중에 하나로서 비유를 해보자면 서울 사람은 테블릿 pc와 스마트 폰을 쓰고 1가구 1자동차 서울 부산 몇시간의 문명을 누리지만 시골 사람은 사농공상의 엄격한 질서아래 소규모 농업중심의 경제체제를 영위하며 과거시험을 보러 걸어서 한양가는게 아닌것 처럼 문명이라는 것은 그 들이 다스리는 모든 지역에 고루 분포되기 마련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환국 문명은 14대 단군인 자오지 단군 치우 천왕 이전에는 청동기 문명입니다만, 이 역시 몽골의 오르도스 문화나 중국의 마자야오 문화 한국의 민무늬 토기 시대 등으로 그 들의 점령지 내에서 제각기 상반되는 청동기 문화로 퇴화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태초부터 기마민족이었다는 묘사와 상반되는 기마민족의 유입시기 역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청동기 시대에 고대 국가 체제를 뛰어넘는 절대 왕권의 체제를 구축했음에도 관직제의 정비나 율령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지는 등 다채로운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콘서트나 대다수 인터넷의 옹호론에서는 이러한 역설을 단순한 강단 사학자들의 농간과 국가 레벨의 개입 등으로 설명하고 있거나 여러 사서에서 일정한 결론아래 기록을 뽑아내는 방식 등으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엄청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사방 수만 km의 땅에서 관련된 모든 문명을 지워버리며 모든 사서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발췌해 완벽하게 만들어내며, 유적지를 완벽하게 만들어내어 민간인들이 공사현장에서 우연찮게 발굴하거나 사실을 모르는 평범한 학자들이 발견하게 유도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4대 문명론이 더이상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그러니까 수많은 고대 문명이 발굴되고 있지만 환국 문명을 비릇하여 환국 문명의 밑 바탕이 된 이 들의 유적지가 단 하나도 발굴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라면 능히 설명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아유사태님께 답변을 드리고자 시작한 글입니다만, 어쩌다 보니 참 제 필력과 위서의 필력 모두를 통감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쓸때없이 정력만 낭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말입니다.
비록 무덤에서 활이 발굴 되지 않았다고 그 사람의 삶에서 활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에서 활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과 같은 시대에 같은 문명 혹은 문화권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이 활을 사용한것을 입증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국 문명을 설명하는 환단고기가 그 내용 자체로 위서임이 입증된 것은 환국 문명이 꽃피고 번성하며 사그러들던 시기에 그 들의 땅에서 그 들의 삶을 입증할수 없기때문입니다.
도리어 그 들과는 다른 이들의 삶만이 입증되고 있지요, 아무쪼록 비록 기대는 되지 않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쓸때없이 길기만한 정력만 낭비하는 부끄러운 글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