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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북극으로
북극에 가면
'희다'라는 뜻의 단어가
열일곱 개나 있다고 한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온통 흰 것 뿐인 세상
그대와 나 사이엔
'사랑한다'라는 뜻의 단어가 몇 개나 있을까
북극에 가서 살면 좋겠다
날고기를 먹더라도
그대와 나, 둘만 살았으면 좋겠다
'희다'와 '사랑한다'만 있는
그런 꿈의 세상
박준,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임영준, 첫사랑
느닷없이 찾아와서
순식간에 다 쓸어갔지
덕분에 제법 모질어도 졌고
얼을 빼진 않게 되었지만
무덤덤해지더군
매번 두근거리긴 했어도
그때처럼 아찔하진 않더라고
이제와 생각하니
차라리 그 숙맥일 때
무슨 일이던 저질렀어야 했어
무슨 일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