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발화
중간이 끊긴 대파가 자라고 있다 멎었던 음악이 다시 들릴 때는 안도하게 된다
이런 오전의 익숙함이 어색하다
너는 왜 갑자기 화를 내는 거지?
왜 나를 떠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거지?
통통거리는 소리는 도마가 내는 소리다 여기로 보내라는 소리는 영화 속 남자들이 내는 소리고
어떤 파에는 어떤 파꽃이 매달리게 되어 있다
어떤 순간에나 시각이 변경되고 있다
저 영화는 절정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이 끝나버린다
그런 익숙함과 무관하게
찌개가 혼자서 넘쳐흐르고 있다
불이 혼자서 꺼지고 있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지나친다
나희덕, 다시, 다시는
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들어 살지 않게 된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어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은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은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