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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는 사라질 수도, 떠날 수도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807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60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1/06 22:37:46
이윤학, 오리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 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 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난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난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지
난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이운진, 도망가는 사랑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이이체, 실험실을 떠나며
나는 시제를 잃어버린 체온이 가엾다
지워진 이름 떄문에 선명한 혈통의 기억
당신이 어깨를 떨며 잠들 때마다 자유로워지는
생애 몇 번째의 졸음들
남몰래 혼혈아를 낳고 싶다
썩은 내를 풍기며 눈을 뒤척여야 할 시간
추운 주머니 속을 나는 부드럽게 헤맬 것이다
아주 먼 옛날 훔쳐 읽은 일기를
페인트칠이 벗겨진 바닥에 피로 필사하던
울지 않는 당신에게 나는 위험한 기계를 선물한다
충혈된 죄의 수면이 얕아서
다른 눈과 한곳에서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짐승들이 내 뒤에서 통곡한다
어떤 피를 거슬러 올라가야 차가운 여름이 있을까
잡초들이 이름도 없이 무성한 교외의
허물어져가는 작은 예배당
당신의 눈에 숨겨진 나의 눈을 되찾아가겠다
내 체온을 받아주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다
권영상, 하루살이와 나귀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줄래?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
내일도 산책 있어
모레, 모레쯤이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김주대, 오랜 동거
눈이 너의 따스한 피부를 만진다
눈을 통해 너의 까슬까슬한 슬픔과
아득한 넓이를 감각한다
너를 본 감각들은 고스란히 몸에 쌓여
몸이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기도 하고
출렁거리기도 한다
너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길을 걸을 때
몸 안의 네가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는 것이다
너는 어쩔 수 없이 눈으로 들어와
갈 데 없이 내가 된 감각
습관화된 나다
이것은 집착이 아니라 몸이 이룩한 사실이다
너는 사라질 수도 떠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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