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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유신의 붕괴
게시물ID : history_159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리독터
추천 : 14
조회수 : 519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5/24 13:05:16

긴급조치 9호가 내려지고 박정희-김영삼 회담으로 야당이 사쿠라가 되던

1975년 6월

미국 하원에서 열린 한국 인권에 대한 청문회에선 주목할 만한 증언이 나왔으니

전 중앙정보부 요원 이재현이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단지 미국 내에서 반한파(反韓派)에 대한 인권탄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반박정희 여론과 활동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회유, 매수, 협박, 공작을 벌이고 있다"

고 증언한 것


이를 계기로 도널드 프레이저 의원은 한국의 불법적인 로비에 대해 알아내고 다니기 시작했고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두달 뒤인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는 무려 10면에 걸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박동선과 한국의 중앙정보부 등이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에게 의회 내에 친한(親韓)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1970년대 들어 매년 50만 달러에서 1백만 달러에 이르는 현금을 포함한 뇌물을 뿌렸다"

라고 보도합니다

그 다음달 미국 대선에서 독재자킬러'인권대통령' 카터가 당선되면서

CIA,FBI,NSA와 국무부, 법무부 등이 동원되어 한국의 비리를 캐내기 시작했으며

하원에서도 국제관계소위원회, 소위 '프레이저 위원회'가 구성돼서 청문회를 열리기 시작하죠

당연히 로비스트인 박동선이 제일 중요했고, 한국 정부에 송환 요청을 하지만

유신 정권은 거부하고 결국 한미 간의 외교 갈등으로까지 번집니다


미국이 식량차관을 삭감한다, 미군 철수시켜버린다 하면서 압박하자

결국 면책특권을 부여받은 채로 청문회에 서게 된 박동선은

32명의 의원에게 85만 달러를 제공했다고 증언했죠


뭐 사실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사건이었지만

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 중에 우리가 아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네, 박정희 대신 더러운 짓 다 하고 다니다가 너무 욕을 먹으니까 잘려나간 그 김형욱

중정부장 잘리고서 국회의원이 됐으나 곧바로 유신으로 국회 해산...

그래도 이제 대통령이 국회의원 임명하니까 한자리 주겠지? 했지만...그런 거 없음ㅋ

 

여기서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이 무너진 김형욱

'박정희 이 개새끼 내가 온갖 더러운 짓 다 해가면서 똥 닦아줬더니...두고보자'하며 박정희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그대로 출국해서 폐인이 되어 해외를 전전하던 그때

 

코리아게이트가 터지면서 한국의 불법적인 로비현황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정권의 반인권적인 행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77년 6월 2일, 김형욱은 뉴욕타임즈와 기자회견을 갖고 박정희를 까기 시작

 

그 길로 청문회까지 나가서 자기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했던 걸 다 까발리기 시작하는 거죠

아예 회고록까지 써서 정리를 했으니..

 

63년 대선에 여론조작으로 야권단일화를 막았

한일회담 때 반대하는 국민들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고

대대적인 부정선거로 치러진 67년 총선

그를 무마하기 위해 죄없는 사람들 고문해서 간첩단 사건 만들고

삼선개헌하겠다고 국회의원들 협박하고 매수하고...

 

당황한 박정희는 몇번이고 사람을 보내서 김형욱 입을 틀어막으려 했고

결국 79년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차장을 만나 파리로 떠난 김형욱은

그 뒤로 아무도 볼 수 없었답니다

26년 뒤,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는

김형욱을 권총으로 암살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요

 

아무튼 이 코리아게이트로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이 드러나자

독재자킬러인권대통령 카터는 끊임없이 인권 문제에 태클을 걸었고

박정희의 핵 개발 의혹까지 드러나면서 한미관계는 악화일로

그걸 해결해보겠다고 정상회담을 했으나...

박정희는 카터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 45분동안 연설을 하고 앉아있으니..

카터는 빡칠대로 빡쳤고..

당시 CIA 한국지부장 그레이그 보고서를 보면

"박정희가 계속해서 이런 정치를 한다면 살아서 정권을 이양하기 어려울 것이다" ㅎㄷㄷ...

 

미국으로부터 원조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박정희식 개발의 효과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2차 석유파동까지 터지면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습니다

 

독재정권이 국가주도 경제개발을 하고 있으니 경제 전반에서 부정부패와 비리가 끊이질 않으니

농협 관계자들이 총 80억을 쳐먹으면서 농민들이 309만원이나 피해를 보는 함평 고구마 사건이 터지고

독재정권은 사람 답게 살고 싶다는 이 농민들과 노동쟁의하는 노동자들을 불순분자로 몰면서 잡아 쳐넣는 상황에서..

 

1978년 7월 6일, 장충체육관에선

박정희 단독후보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577명 전원 찬성으로 박정희가 또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데

 

당시 교과서엔

공산국가에서도 형식상 선거를 치른다. 그러나 그 선거는 민주주의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선거와는 다른 일종의 사기행위이다. ……우선 공산국가의 선거에서는 단 한사람의 입후보자에 대하여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것을 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권자는 찬성할 수 있는 자유는 있어도 반대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선거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많은 사람 중에서 적격자 한사람을 고르는 선택행위인데 입후보자가 한사람밖에 없다는 것은 벌써 선거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선거 결과는 항상 99% 이상의 투표율과 99% 이상의 찬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선거 분위기 속에서 반대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공산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만이 있을 뿐 다른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국가들임을 알 수 있다.

라고 하는데...지금 하는 짓이 공산국가가 한다는 짓인데...

말도 안되는 유신헌법으로 자유는 물론이고 민생까지 짓밟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만은 쌓여갔고

 

서울대 데모, 광화문 시위 등의 대규모 유신반대운동이 펼쳐지면서

그 해 말 총선에선 결국




 

신민당이 공화당보다 많은 표를 받습니다

사상 최초로 야당이 득표 제1당, 야당 하나가 여당보다 많이 득표를 한 건데

 

이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자유당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60년동안

이때와 16대 총선을 제외하곤 한번도 야당 하나의 득표율이 여당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때는 금권선거와 관권선거가 판 치던 시절..

 

하지만 당시 국회의원은 1/3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지역구도 중선거구제로 여당 당선을 보장해주니

신민당은 최다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의석의 1/4밖에 안되는 거죠

 

79년 5월, 신민당은

저번에 박정희랑 회담하고 온건투쟁으로 선회했다가 긴급조치로 구속되면서 뒷통수를 크게 맞은 김영삼

제대로 빡쳐서 선명야당, 박 정권 타도, 민주회복 등을 내세우면서

다시 총재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 해 8월,

봉제합섬제초업체였던 YH무역 역시 경제악화를 피해가진 못했고

사장은 수주대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선 회사를 부도처리해버렸죠

이에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16시간씩 일하던 여공들은

고작 몇백원씩 받던 월급조차 못 받게 되자 농성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망할 놈의 정권은 이 불쌍한 여자애들한테 경찰을 보내서 끌어내려고 했고

8월 9일, 여공들은 신민당으로 도망갑니다(!!)

 

김영삼 총재는 이 200명의 여공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신민당사를 찾아준 것은 눈물 겹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ㅅㅂ김영삼이 멋있어ㅠㅠㅠㅠ(20년 뒤엔 억울하고 약한 노동자들한테 왜 그랬어요..)

 

다음날, 박정희 정권은 관계부처회의를 열어 강제해산을 의결하고

소식을 들은 여공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가운데

김영삼은 또 다시 말합니다

"내 이름 석 자와 신민당의 명예를 걸고 조속히 여러분들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겠습니다.

경찰이 신민당사에는 절대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나와 신민당원들이 여러분들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YS 폭풍간지...

 

새벽 11시, 서울시경은 신민당에게 최후 통첩을 전하며 '총재를 바꾸라' 했고

김영삼은 "건방지그로 누구 보고 전화 받으라 카노?"하면서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갑니다

 

신민당사 밖에는 여공 200명을 잡겠다며 2000명의 경찰이 몰려온 상태

김영삼은 마포경찰서장 멱살을 잡고

"너거덜 저 여공들 다 주길라 카나? 어이?"하며 싸다구...

 

그리고...

수천명의 경찰병력이

농성하는 노동자 몇명 잡겠답시고

멋대로 남의 건물을 깨부수고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관계자들까지 다 연행하기 시작합니다

(1979년 10월인데 2013년 12월 같은 건 기분 탓입니다)

23분 만에 작전은 종료되었는데

이 여자애들을 얼마나 처참히 끌고 나갔는지 21살의 여공 김경숙은 죽어버렸고

신민당 당원, 국회의원, 심지어 김영삼까지 개끌리듯 끌려나와서는

박권흠 대변인은 갈비뼈가 골절당하고 얼굴이 뭉개졌으며

박용만 의원은 다리가 부러지고 황낙주 의원이 어깨를 얻어맞고

김영삼은 그 길로 경찰차에 실려서 가택연금...

그렇게 172명을 연행하고, 농성 주동자 3명과 문익환 목사 등 5명을 배후조종으로 구속


여기에 신민당은 김경숙 사인규명과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입니다

크으...이 얼마나 야당다운 멋진 모습인지...

 

미국까지 나서서는 국무부에서

"경찰의 강제해산 조치는 분명 지나치고 가혹하다"는 성명을 냈고

박정희 정권이 반발하자

"국무부는 지난번 성명의 입장을 고수한다. 한국 당국이 관련자를 징계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는 논평을 또 냅니다

 

한편 박정희는 모처럼의 간지나는 모습을 보인 김영삼이 거슬렸고

총재 가처분 신청을 내죠

이젠 뭐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거에 이어서 야당 총재도 대통령 맘대로 하겠다...

 

김영삼 또 빡쳤어요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하면서

'카터는 인권대통령이라면서 뭐하냐?

한국에 원조 중단하고 민주화하게 압력 넣으라고!

박 정권 타도! 박정희 하야!!!'

감히 독재자 운운했다가는 대선후보도 감방 가는 유신정권 하에서 야당 총재의 하야 발언에 빡친 박정희는

아예 국회의원에서 잘라버리게 국회의원 제명을 추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각하, 김대중도 연금 중이고 김영삼도 총재 잘랐는데 의원 제명까지 시키면 반발이 심할 겁니다'하고 말렸음에도

차지철 경호실장은 '아, 언제는 반발 없었습니까. 저런 놈은 확 잘라버려야죠'하면서 밀어붙였고

10월 4일, 여당의 날치기로 김영삼이 결국 제명

이게 우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국회의원 제명이죠

웬만큼 미친 짓을 해도 국회의원들이 자기도 제명될까봐 찬성을 거의 안 하거든요

근데 당시는...그런 것보다 대통령이 더 무서운 거죠. 애초에 국회의원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 탄핵소추권까지 있는 국회의원이 대통령 하야 발언을 했다고 제명...(왜 2013년 같지?)

국민 손으로 안 뽑은 대통령이 멋대로 국회의원을 임명하더니

국민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을 맘대로 잘라버려?

 

야당 의원들도 다 빡돕니다

'어차피 대통령 맘에 안 드는 야당이면 잘릴 거 사표 내고 할 말 다 하겠다 시발 이게 국회냐?'

10월 13일 신민당과 통일당 의원 총사퇴!!!!!


미국은 대사 소환!!! 외교적으로 가장 큰 항의죠

작작 좀 해라 이 미친 놈아!

 

그리고 10월 15일

부산대에서 민주선언문을 발표하면서

16일부터 대학생들이 벌인 시위는

17일 부산시민 전체로 번졌고

18일엔 마산으로 19일엔 창원으로 번져나갑니다

이게 부마항쟁이죠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직접 시찰을 나가봅니다

그리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박정희에게 보고하는데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연행자 160명 중 90%가 일반 시민입니다.

그리고 데모대도 데모대지만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주고 완전 의기투합 상태입니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더이상의 강경진압은 안됩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지철이 말로는 김영삼이가 선동해서 떨거지들이 하는 거라던데?

이봐, 임자! 중앙정보부장이 뭐 그리 마음이 약해? 지철이를 본받아보란 말이야. 자신감이 넘치잖아."

이러면서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해 1058명을 연행...

20일엔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

 

이쯤에서 차지철 얘기를 하자면

5.16 때 대위로 참여한 박정희의 심복으로

박정희 빽이 얼마나 센지 30살에 국회의원에 36살에 외무위원장

박정희 빽 믿고 국회의원들을 때리고 다니다 김두한이 "차 의원이 그렇게 싸움을 잘 한다며? 함 붙어볼까?"했다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된 뒤에는

경호실장 주제에 장관급으로 격상시켜서는 비서실 업무도 지가 다 해쳐먹고

경호실 인력한테는 나치 친위대 같은 복장을 입혀놓고선

중정보다 더한 정보력을 갖고 있으니...박정희도 김재규보다 차지철을 믿고..

삼대 마왕

예비군 소령 주제에 쓰리스타들을 차장에 앉히고..무슨 수도경비사령부 지휘권도 갖고;;;

일주일에 한번씩 국기하강식이란 걸 하면서 무슨 장관에 4성장군도 오라가라 하면서..

별 단 장군들은 무조건 전두환 시켜서 데려와갖고 인사를 받았다고..(소령 주제에;;;)

심지어 중장 출신의 김재규를 비롯해 대장 출신의 김계원 비서실장, 거기다 총리한테까지 반말을 했다는 소리가...

그래서 부통령 각하 소리를 듣고 다니고...

 

김재규는...이 시국에 어느정도 회의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해..미국도 그렇고 부마도 그렇고..

그리고 저 앞에 말한 거지만 사실 김형욱이 죽은 것도 이 79년 10월...

박정희도 뭔 말을 안 들어주고...차지철 저 싸가지 없는 새끼는 빽 믿고 지랄이고..

나도 이러다 언제 김형욱처럼 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리고 10월 26일...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대행사가 있었습니다

대행사가 뭐냐면...음...

 

박정희는 색마였죠

"헤소노 시타니 진가쿠가 아루가(배꼽 밑의 얘기는 하는 게 아니다)"가 신조..

그렇게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면서도 사생아는 건들지 않았다는...(본인이 제일 구리니까)

 

혹자는 육영수가 죽고 외로워서 그랬다고 하지만

사실 정권 잡자마자부터 그랬던 게

군정 때 미군 상대로 성매매한답시고 워커힐 만들었는데 많이 안 오니까 본인이 애용했다고...

백악관 출입기자한테도 여자를 붙이려고 한 적도 있고...

미군 상대로 위안부를 만들려고 한 적도 있으니...(77년 기지촌 정화대책)

 

소위 밤마실도 많이 다녔는데

'국군 여장교 추문사건'이라던가..'새마을어머니 배구대회 추문사건'이라던가..

소문이라서 별 얘기는 안 하겠다는

제일 유명한 건 'H아파트 사건'이라고..어느 유명 여자 연예인 사는 아파트에서 박통이 목격된 건데

이건 박정희 죽은 뒤에 그 아줌마가 억울하다고 법정까지 갔으니까 뭐...

 

그리고 나중에 궁정동에 안전가옥이 만들어진 뒤엔

거기로 여자들을 불러왔는데

일주일에 2번 정도 '소행사'라고 해서 박정희랑 여자 1명이랑 갖는 자리와

2주에 1번 정도 '대행사'라고 해서 박정희 외 고위관료들과 여자 몇명이서 갖는 자리가 있었는데

연예인들을 많이 데려왔었다고..

 

'위계에 의한 강간'이죠...이걸 거부하면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촬영하다 말고 불려가고 그랬다고도 하는데...심지어 유부녀나 모녀도 있었다고..

이때 박정희의 '성은'을 입은 여자가...박선호 의전과장이 아는 것만 200명...

 

소행사의 경우 박정희가 TV를 보면서 고르는 경우도 있었고

("어이, 차 실장, 오늘 저녁은 xxx를 먹도록 하지." xxx에 좋아하는 여가수나 여배우를 넣어봅시다. 빡치죠?)

대행사는 경호실이나 중정 의전과에서 데려갔다고..

 

이것 때문에 육영수 여사랑 부부싸움 엄청 했다고...육영수 여사가 재떨이로 맞았다는 소리도 있고...

육영수 여사가 그래서 생전에 박종규 경호실장이 여자 데려온다고 되게 싫어해서

한번은 홍종철한테 박종규 뒤 좀 캐보라고 시켰다가 박종규가 와서 엽총으로 천장을 탕!(박종규 별명이 피스톨 박..)

박종규는 아이러니하게도 육영수 여사가 암살되면서 경호실장에서 잘리게 됩니다..그리고 후임으로 더한 놈(차지철..)이...

 

개인은 청렴했다 어쨌다 하는게 참 웃기지도 않은 게

이렇게나 더러운 양반이었으면서

맨날 화면으로만 뭐 서민적인 양 하고

뒤로는 죄없는 사람들 족치고 정수장학회처럼 남의 것 빼앗고

각하특별기금, 국가발전기금 운운하면서 얼마나 쳐먹었으면

박정희 사후에 김종필이나 이후락이 '떡 만지다보니 가루가 묻었다'며 부정축재로 잡혀가고도 전두환이 박근혜한테 6억이나 줬을까

친인척부터 시작해서 동향에 동문에 동기에 구두닦이 하다가 공기업 사장 되고 국회의원 된 사람이 박정희 주변에 한둘이냔 말이죠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더러운지...

개인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공과 과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너무...어휴...

 

여튼

1979년 10월 26일 그 날도 대행사가 있었고

박정희는 김재규, 차지철, 김계원과 함께

여가수 심수봉과 신재순을 양쪽에 끼고 고급 양주 시바스리갈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천하의 개같은 소리를 듣던 김재규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하면서 총을 꺼내

"차지철 너 이새끼 건방져!"

하며 차지철을 쏘고선(경호실장이 총도 없냐)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

 

이후 육군본부로 간 김재규는 김계원이 나타나 김재규가 쐈다 하자 체포됐고

 

그렇게 박정희 1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던 유신 체제는

박정희가 죽으면서 붕괴됐고

그렇게 민주화가 찾아오나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독재권력을 이기기 전에 독재정권이 자멸한 것으로서

힘의 공백이 발생했고..

비극적이게도..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임명돼죠

 

참고자료: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 (이동형, 2011)

[정치과외 제1교시] (이동형, 2012)

[한미갈드으이 해부] (문창극, 1994)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 김형욱 실종사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함평고구마사건:http://db.kdemocracy.or.kr/Collection?yy=1970&evtNo=10000040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선거정보시스템:http://info.nec.go.kr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3권 (강준만, 2002)

KBS 인물현대사 '각하가 곧 국가다 - 차지철'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문명자, 1999)

[서울도시계획이야기:격동의 50년 나의 증언] (손정목, 2003)


블로그:http://blog.naver.com/csr100/110184956859


18. 5.16 군사정변:http://todayhumor.com/?humorbest_835530

19.군정 4대의혹사건:http://todayhumor.com/?history_14087

20. 1963년 대통령 선거:http://todayhumor.com/?humorbest_847139

22.한일협정과 6.3항쟁:http://todayhumor.com/?history_14517

24. 6.8 부정선거:http://todayhumor.com/?history_14931

25.박정희 삼선개헌:http://todayhumor.com/?humorbest_859412

27. 1971년 대통령 선거(박정희vs김대중):http://todayhumor.com/?humorbest_864635

29.유신전야:http://todayhumor.com/?humorbest_874125

30.유신:http://todayhumor.com/?humorbest_876976

31.김대중 납치사건, 긴급조치의 시대:http://todayhumor.com/?humorbest_880691

32.제4공화국, 겨울왕국:http://todayhumor.com/?history_1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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