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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 잠깐만 죽을게
게시물ID : lovestory_806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9
조회수 : 6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05 21:57:47
사진 출처 : http://grudg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WOixj7ald1s




1.jpg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앞에 기어들어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을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쁜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었어요
잘 살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2.png

정병근, 희미한 것들에 대하여




거울의 뒷면은 깜깜하고 어둠이다

쨍그랑 하고 깨어지는 것은 어둠 때문이다


어릴 때, 별을 보면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 옆에 희미한 별빛이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면 사라지는

그러나 다시 빛나는 눈 밖의 빛


내 사랑은 대체로 희미하였다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누군가가 있었을 뿐

너를 눈앞에 두고도 나는

눈 밖에서 부지런히 기억을 만들었다


선명한 것들은 나의 적이었다

선명한 것들은 끊임없이 나를 지웠고

나는 줄기차게 선명한 것들을 지웠다

희미한 사람들과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웃고 울었다

희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희미해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나, 이제 희미해졌다

내가 그러했듯 지금쯤 너의 사랑도 희미할 것이므로

너의 눈 밖에서 나는 희미하게 빛날 것이다

똑바로 쳐다보면 사라지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저, 눈 밖의 빛







3.jpg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내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4.jpg

김하늘북극 나비

 

 

 

흰 발을 물에 담그면 많은 것들이 괜찮아져

우산을 숨기지 않아도 파래지는 시간

우리는 12시적인 것들을 사랑하자고 맹세했지

따듯한 고양이 똥한 스푼의 컵케이크파란 나비 같은 것들

 

너는 수요일이라고 했어

그런 날에는 부패한 소시지처럼 물속에 있자고

추위의 세계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지루할 정도로 쉬고 싶다고 속삭였어

몸을 말아서 동그란 게 아니라

동그랗기 때문에 온몸을 이렇게 말고 있는 거라며

다슬기처럼 아주 가끔씩 살아 있는 흉내를 냈지

 

나는 고요를 쬐며

막 두 번째 허물을 벗고 있었어

-르르르 팟-르르르

젖은 날개를 말리는 동안 한 쌍의 나비가 되는 우리

모든 게 침묵하는데도 진화하는 것들은

어떤 무심함을 인내하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아무것도 껴안지 못하는 마음

물속에서 갓 건져낸 무릎

푸른 멍

 

우리는 없는데

시간은 자꾸만 북극으로 질주하고 있어

비로소 수면 위로 달이 차오르면

캄캄한 밤의 방해를 견딘 날갯짓나비의 온기비행

그런 것들이 정말 환영 같을 때가 있어







5.jpg

김근, 바깥벌레



너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안이다 아니다
꽃도 피지 않고 죽은 나무나 무성한
무서운 경계로 간다 정거장도 없다
꽃다발처럼 다글다글 수십 개 얼굴을 달고 거기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그 얼굴 하나 꺾어
내 얼굴 반대편에 붙인다 안이 아니다
내 몸에서 뒤통수가 사라진다 얼굴과 얼굴의
앞과 앞의 무서운 경계가 내 몸에 그어진다
너와 헤어지고 나는 무서워진다

너를 죽이면 나는 네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안은 다시 바깥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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