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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며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 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 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떈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이준규. 흑백1
도도한 입술이 흐리게 젖는다
섬망을 노래하는 어리석은 벌레들이
검고 푸르게 간격을 지우며 움직인다
시곗바는 소리에 맞추어
사랑한다고 함께 죽자고
숨이 벅차다고 그늘이 훤하다고
이응준, 그대, 오랜 불꽃
시든 벚나무 아래서 그대를 생각할 때
나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았네
괴로워 되뇌일수록
함정일 뿐인 꽃비 내리는 한 시절
섭리와 운명을 무시하던 버릇이
우리의 가장 큰 행운이었으니
자꾸 사라지고 간혹 미치게 밝아오는
그대 병든 눈동자
무심코 나를 버리소서
귀머거리에게는 음악이었고
벙어리에게는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던 그대
내 가슴을 삶은 이 어두운 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소서
기도 중 빛나는 상징이고자 하였으나
악몽의 피비린내 나는
통곡밖에는 될 수 없었던
그립다는 그 말의 주인의 그대
가시밭길을 걷는 맨발의 소풍이시여
천양희, 놓았거나 놓쳤거나
내가 속해 있는 대낮의 시간
한밤의 시간보다 어두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어안이 벙벙한 어처구니가 되고
어떤 날은 너무 많은 나를 삼켜 배부를 때도 있다
나는 때때로 편재해 있고
나는 때때로 부재해 있다
세상에 확실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것만큼
확실한 오류는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불꽃도 타오를 때 불의 꽃이라서
지나가는 빗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고독이란 비를 바라보며 씹는 생각인가
결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혼에 성공한 것이라던
어느 여성 작가의 당당한 말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내게 중얼거린다
삶은 고질병이 아닌
고칠 병이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잘못한 적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뿐이다
물에도 결이 있고 침묵에도 파문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이 무서운 건 마음이 있어서란 것도 미리 알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나
시간의 넝쿨이 나이의 담을 넘고 있다
누군가가 되지 못해 누구나가 되어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이지
돌아보니 허물이 허울만큼 클 때도 있었다
놓았거나 놓친만큼 큰 공백이 있을까
손가락으로 그걸 눌러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쓰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