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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게시물ID : lovestory_805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엘라스
추천 : 0
조회수 : 7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23 13:59:18
 
 
조선비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치매 노모 살려낸 65세 아들... 9년간의 밥상 일기
9년간 치매 엄마 밥 해먹인 블로그 요리왕 ‘스머프할배’
생선스테이크, 양미리조림… 치매 진행따라 맞춤 요리만 500개
어머니와 보낸 아름다운 유년 시절 떠올리며 고통 이긴다
 
-1년 작정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9년이 됐다고요.

“처음에 어머니 변이 까맸어요. 의사들이 6개월 넘기기 힘들다고 했죠. 돌아가시기 전에 밥 한번 제대로 해드리자 해서 시작한 거죠. 그런데 그 밥을 드시고 점점 기운을 차리셨어요. 의사들이 다들 기적이라고들 해요.”

노인에게 ‘식탐'은 살고 싶다는 의지다. 새벽밥을 안치고, 대소변 빨래를 하고 간식을 챙기고 잠시 깜빡 졸 새도 없이, 모친은 “배고프다, 밥 다고! 밥 다고!” 노래를 했다. 어린아이가 한 몸 안에 포개진 그 육체 안에, 먹는 환희와 못 먹는 노여움이 무질서하게 드나들었다.

-한편으로는 독박 희생이 억울하다 싶기도 할 텐데, 식구들과 불화는 없었나요?

“다른 식구가 하룻밤만 대신해줘도 좋을 텐데, “저것들은 오면 내가 밥해줘야 돼"하면서 거부하세요. 하하. 어머니가 오직 저만 원하세요. 지금도 식구들 오면 제가 어머니 말을 통역해야 해요. 아내는 저한테 고마워하죠. 정신 온전하실 때도 어떤 며느리도 비위를 못 맞췄어요. 아침이면 “이년아! 해가 똥구멍에 떴냐?” 소리부터 지르셨어요. 누가 대신해줄 수가 없어요.”

-과연 우리 ‘징글맘’이 성격이 대단하시네요.

“엄마는 함경도 여성이고 아버지는 경상도 남자였어요. 두 분 입맛이 참 안 맞았어요. 아버지는 칼국수를 엄마는 냉면을 좋아하셨어요. 아버지가 칼칼한 된장 찌개 먹고 싶어 해도 엄마는 끝끝내 맑게 된장국을 끓여내셨어요. 고집이 셌지요. 지금도 아들이라고 봐주는 게 없어요.”

정작 그는 어머니 말에서 답을 찾았다. “늘 자물쇠가 있으면 열쇠가 있다, 그러셨거든요.” 어머니는 새벽마다 깨서 쇼를 했지만, 그 시간에 깨서 밥해드리고 나면 책을 봤다. “노인에게 무슨 요리를 해드리나 공부를 했죠. 해보니 제가 요리사 체질이었던 거예요.”

먹고 싸고 성내고 사랑하고... 그 지지고 볶는 모양을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한 지 9년. 사람들은 매일의 메뉴와 따뜻한 하소연을 담은 그의 효도 일기에 열광했다. 스머프할배라는 별명은 자동 검색이 될 정도로 블로그의 유명 인사가 됐고, 요리에 관한 한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명답을 내주는 척척박사로 통한다. 하루에 달리는 공감과 응원의 댓글만 5백 개. 전국 각지에서 자전거 헬멧이니 프라이팬이니 음식이니 ‘구호 물품'이 답지한다.
 
-요리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된 건 정말 다행이군요.

“안 그랬으면 젊은 날 광고한다고 날뛰던 놈이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버텼겠어요. 저는 블로그에 이것저것 사는 모습 글로 흥얼거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시는 분들은 “저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안도를 하시죠. 부모님 가시고 효도 못 하신 분은, 또 제 노동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세요.”

처음엔 된장찌개, 김치찌개나 하던 수준이 지금은 함박 스테이크에 미트볼, 일본 규돈에 중국 기스면, 함흥냉면에, 김치도 이북식 경상도 식 종류별로 척척이다. 서툰 칼질에 피도 흘리고 곰국 끓이다 화상도 입었지만, ‘한 여인'을 위한 맞춤 요리사가 된 것.

생과일주스도 물김치도 농도와 간이 안 맞으면 탁하고 내려놓는 징글맘의 까칠함은 그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했다. “밴댕이 소갈딱지야~” 욕먹으며 밴댕이 조림을 만들땐 천불이 나지만, “너도 옛날에 오므라이스 좋아했지.”라는 추억담은 감칠맛 나는 소스가 되기도 했다.

공 없는 봉양 살이에는 때론 자학적 유머도 약이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내가 징글맘과 생활하는 일상을 보여주면 ‘제기랄!’하며 도망갈 거예요. 너는 돌대가리니 참지만, 나는 인공지능 로봇이니 거부할 거다,하면서요. 하하”

-가장 큰 문제는 뭐죠?

“잠이에요. 밤 11시, 새벽 2시, 5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효자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골룸처럼 괴성을 지르시죠. 시도 때도 없이 수라상 대령해야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버스나 전철만 타면 코를 골면 쓰러져 종점까지 까무룩 이에요. 청소부 아줌마가 걸레질하며 “어르신, 숙박비 내세요." 하기 일쑤예요.”

옆에 앉은 징글맘은 지루한 인터뷰 시간을 못 참고 계속 ‘날 좀 봐달라'고 보챘다. “엄마야! 캬라멜 까주까? 커피 우유 줘?” 보살핌을 받은 노인은 또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기운이 없어서, 그저 앉아서 저 괴롭히는 게 낙이지요.” 그가 웃는다.

-어머니가 언제 사랑스럽고 언제 미우세요?

“어머니도 정신이 돌아오시면 고마움을 표시하세요. “애비야, 고맙다. 맛있는 거 만들어줘서 행복해.” 그러면 너무 사랑스럽지요. 미울 때는 밤에 잠 깨울 때, 그리고 치매 등급 검사하러 온 기관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멀쩡한 척하실 때에요. 외부인만 오면 영어도 일본어도 툭툭 나와요. “나는 똑똑해. 멀쩡해" 이러시니 너무 얄밉죠. 내 엄마지만 부지깽이로 이마를 쪼사 버리고 싶다니까요. 하하.”

좁은 방에서도 모자의 티격태격은 끝이 없다.

“문디 자식, 에미에게 두부를 주고 있어. 니나 처먹어.”-두부를 싫어하신다.
“애비야! 냉면은 배달시키면 맛이 별로야. 네가 만든 육수로 해 다고.”-선주문 후 밥상에 앉아.
“어느 년들도 이런 거 만들어 주지 않았어. 정말 니가 최고야.”-과격한 감사 표시.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중에서.
 
(중략)
-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을 텐데요.

“성경의 에스겔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신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이길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신다는 거죠. 다 놓고 싶은 마음과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갈등하다 결국은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이겨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초등학교 때요.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어머니가 학부형 대표로 노래도 멋드러지게 부르시고, 맏이인 저를 아껴서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때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이 아름답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게 버틸 수 있는 힘이에요. 성내고 욕하실 땐, ‘어여, 그 강을 건너가세요.' 하다가도 추억의 힘으로 또 살아요.”

효자도 뭣도 아니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스머프 할배의 성실한 악전고투 속에서 엄마와 아들, 사랑과 절망의 구획은 허물어진다. 생로병사를 함께 통과하는 모자의 몸은 그 신체발부와 오장육부의 구석구석이 음식의 집이며, 오직 사랑과 책임이 거기에 깃들여 산다.

그리하여 65년 전 어머니 탯줄을 달고 피투성이로 세상에 나왔을 때처럼, 우리의 스머프할배는 아침마다 늙은 ‘피투성이'로 눈을 떠 마음의 밧줄을 붙잡는다.

“혼돈의 밑바닥까지 다 보았지만, 언제까지라도 징글맘은 훌륭하고 헌신적이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시다. 그러니 부디 징글맘도 우리 5형제에게 쏟았던 내리사랑을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지 않으시기를…아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02/2016120202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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