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림, 남학생
내가 누나를 기다리면서 무얼 하면 좋을까요
떨어지라면 떨어질게요. 바닥에 물이 되라 하면 할게요
반짝반짝 영감이 되어줄게요
허연,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진은영, 사랑의 전문가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홍성란, 추신
당신이 나를
보려고 본 게 아니라
다만 보이니까 바라본 것일지라도
나는 꼭
당신이 불러야 할 이름이었잖아요
나태주, 흐르는 별
밤이 환상의 세계라면
너는 흐르는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