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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 시인 박정만
게시물ID : lovestory_804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3
조회수 : 5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14 10:09:11
[시인 박정만]

신내림 받는 무당처럼

죽기 전 이십 여일동안
소주 삼백 여 병을 마시면서  
삼백 여 편을 시를 써 내려갔던
사람이 있다.

시인 
박정만.

그가 유명을 달리 했던 나이 
마흔 둘.
난 이미 그 숫자를 꺾었는데
소주도
시도 
한심하기만 해서
새벽에 눈만 뜨고 꿈뻑거린다.

몇 년째인가,
억울함에 할퀴어진 혼을 얻지 못해
멀쩡하게 고장난 육신만 가지고
삐뚤 삐뚤 혼을 맞춰보는 
한심한 자는.


* 박정만 시인 :

박정만은 1946년 8월 26일 전라북도 정읍군 산외면 상두리에서 출생했다. 1965년 7월, 전주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경희대학교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서 시 「돌」이 장원을 받았다. 1967년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8년 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신춘시〉 동인에 가입했다.
1971년 2월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학원출판사에 입사했다. 1972년 4월 문공부 문예 작품 공모에 시 「등불설화」, 동화 「봄을 심는 아이들」이 당선되었다.
1975년 학원출판사 퇴사 후 학창사, 중앙문화사 등을 옮겨 다니다 1977년 11월『월간문학』 편집부장으로 입사했다. 1979년 10월 『월간문학』에서 퇴사했다. 1979년고려원에서 첫 시집 『잠자는 돌』을 간행하고, 1980년 고려원 편집부장으로 입사하였다.

1981년 5월, 소설가 한수산(韓水山)이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의 필화사건으로 연행되어 온갖 고문을 받았다. 이 고문으로 인하여 그는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극심하게 악화되었다. 결국 그는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년에 간경화증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1984년 9월 동화집 『크고도 작은 새』(서문당)를 발간했고, 1986년 4월 시집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오상사)를 발간했다.
1987년 8월 19일부터 20여 일 동안 무려 300여 편의 시를 썼다. 그 해 8월, 수필집 『너는 바람으로 나는 갈잎으로』(고려원)를 발간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시집 『무지개가 되기까지는』(문학사상사)을 발간했고, 이어 11월에는 시집 『서러운 땅』(문학사상사)을, 12월에는 시집 『저 쓰라린 세월』(청하)을 간행했다.
1988년 1월 간경화로 병원에 1개월간 입원하였으며, 같은 달 시집 『혼자 있는 봄날』(나남)을 발간했다. 그해 3월 시집 『어느덧 서쪽』(문학세계사)과 『슬픈 일만 나에게』(평민사)를 발간했다. 같은 해 8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인사동 서림화랑에서 ‘박정만 시화전’을 열었고, 이 시화전의 작품을 담아 『박정만 시화집』(청맥)을 간행했다.
1988년 10월 2일 타계했다.
1988년 11월 유고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실천문학사)이 간행되었고, 1990년 9월『박정만 시전집』(외길사)이 간행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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