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발해의 주민구성에 대해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이었다는 식의 이원적 주민구성론으로 이야기하죠.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은 제3자인 일본 학계가 인정하였고 이러한 사실은 발해의 문왕이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 고구려국왕 대흠무가 말하다라고 하였다든지, 성이 밝혀진 32명의 일본 파견 사신들 가운데 고구려의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26명이나 되었다는 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한․중․일 기록에 나타나는 317명에 달하는 발해인을 성씨별로 분석해도 대씨가 90명, 고씨가 56명, 왕씨가 22명, 이씨가 18명, 장씨가 13명 등으로 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구려시대의 귀족과 그 후예들로 보이죠.
이처럼 지배층은 고구려의 후예라는데 이견은 없지만 문제는 발해국의 피지배층이었다는 말갈임. 말갈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말갈이란 중국 중심적 역사관과 왕조 중심적 역사관이 투영된, 중국 동북방의 이민족들을 통칭하던 낮춤말인 동시에, 신라의 변방주민을 낮추어 부르던 종족이름이라는 것임. 또한 그들 스스로 말갈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남이 일방적으로 멸시하여 불렀던 호칭이며 흑수부의 말갈을 포함한 몇몇 말갈부락을 제외한 대부분의 말갈인들은 옛 고구려의 피지배주민으로서, 고구려가 멸망하고 난 뒤에는 당연히 고구려 유민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류죠.
정약용은 참말갈과 거짓말갈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즉 고구려․백제․신라의 변방주민들에 대한 낮춤말이자 범칭이며 속말말갈이나 백산말갈은 송화강 지역의 시골 사람이나 백두산지역의 시골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어 부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한강 변두리유역의 사람을 한수말갈 등으로 불렀다는 것. 속말말갈 대조영도 송화강 시골 출신 대조영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며, 발해 건국의 주체였던 대조영 무리는 고구려시대 송화강 지역에 연고가 있던 주민들이었다는 뜻이 됨. 그러나 흑룡강 중하류지역의 흑수말갈처럼 고구려와 발해에 비해 상당히 이질적인 사람들을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들은 참말갈로 고구려인과는 다른 종족인 말갈인으로 봐야된다고 함.
요즘 다문화사회를 주장하면서 발해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말갈이 이민족이니 다민족국가라고 주장하는 점은 자칫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될 수 있으므로 단순히 말갈인이 다 고구려와 상관없는 이민족이라는 판단은 지양되어야 함..
세줄요약
흔히 발해 지배층은 고구려, 피지배층은 말갈
말갈은 참말갈, 거짓말갈이 있다. 거짓말갈은 고구려 유민
동북공정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