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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Z-보고서-2
게시물ID : panic_802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로군
추천 : 34
조회수 : 2155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05/28 2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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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7#
그것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합니다. 중국에서는 콩이라고 부릅니다. 비어있단 뜻이지요.
일본에서는 카라스히또라고 부릅니다. 까마귀사람 이란 뜻인데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와 한국이 신기하게도 같은 명칭으로 부릅니다. 아시다시피 바로 아귀지요. 힌디어 발음으로는 크로취지요. 그리고 서방쪽에선 바디스나 워커스, 헝거스 등으로 불립니다. 의외로 좀비라고는 잘 불리지 않지요. 왜냐구요? 식상하잖아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가자 많이 불리는 명칭은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들입니다. 

8#
배준장님이 두달만에 대통령명으로 세 계급  특진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일이어시습니다.
북한에 투입된 511 보병여단에서  유일하게 남은 중대의 중대장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개성 공단 탈환에는 적어도 여단급 이상의 병력이 필요했고 지원한 장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탈환에 성공했으니 조만간 또특진이 이뤄질건 같은데....탈환이 이뤄지자 여기저기 지원한 장군님들이 늘어나서 어찌될지.... ㅎㅎ
그분의 느낌이요? 뭐.... 훌륭하신 분입니다. 단점이요? 아 이런것 까지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딱 행보관 스타일입니다. 엄청 깐깐합니다. 인품은.... 인품도 행보관입니다.

9#
중국은 만리장성 덕분에 연명했다고 봅니다.선양과 하얼빈의  수천만의 그것들이 장성에 가로막혀 중국은 수도를 베이징에서 칭따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사건이 터지자. 중국의 반응을 재빨랐습니다.베이징의 감염자및 감염 위험군들을 분별할 틈도 주지 않고 모조리 소거해 버렸습니다. 
만리장성의 빈 틈을 막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의외로 인력은 수백만이 아닌 이십만으로 끝내버렸습니다. 바로 대형버스와 컨테이너로 말입니다. 덕분에 그것들은 고비사막을 건너야만 했지요. 
몽골 국민들은 중국을 증오하며 시베리아로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곳으로 가는 습성탓에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모르는 일이지요.중앙 아시아에게는 날벼락이었습니다. 전세계가 기대한 알라의 불벽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막이 지겨워졌던지 그것들은 중동 대신 대부분 인도를 택했습니다.
동남아 인구는 동으로 대이동 중입니다. 조만간 베트남의 보트피블을 다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중국이 신수도를 상하이가아닌 칭타오로 선택한건 바로 상하이가 장강 밑에 있어서 입니다. 그리고 여차하면 남한이나 일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 
중국이 살아남은 것이  현대 과학이 아닌 이천년전의 고대 유적 덕분이란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10#
아 장군이란 칭호는 빼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배준장이라고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네 우리 중대가 살아남고 또 재편성된 연대가 개성을 탈환하게 된 것은 딱 세가지 이유였습니다.첫번째 저희는 절대 순찰 및 정찰을 하지 않습니다. 미련한 짓이지요. 그저 고지에 진을 치고 토성을 쌓고 불피우고 소리를 내면 알아서 오는데 정찰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좋은 먹이감만 던저주는 꼴입니다. 인간이 아닌것들에게 교본대로 대응하면 먹히겠습니까? 
두번째는 공중이동입니다. 저희는 고지와 고지에 있는 나무위에 줄을  묶어 부대 전원이 이동합니다. 이 공중길이 GDP에서 개성 공단까지  열두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사주경계를 한다고 해도 움직이는 시체들 사이를 빠져나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이 작전때문에 작전의 속도는 다소(?) 느려졌지만 인명손실은 최소한 으로 줄였습니다.
세번째는 일인 일실 취침입니다. 이것도 작전의 속도를 느리게 했지만 전멸한 대부분의 중대가 바로 취침 중 단순 감기였던 환자의 발병 때문이었습니다. 고시원 같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병사들에게 제일 호응이 좋았습니다. 자다가 죽고 싶진 않거든요. 

11# 
그 사건은 배준장님입으로 절대 먼저 말씀하지 않으실 겁니다. 배준장님의 상명하복 불복종 사건은 저희 중대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셨어요. 
그 당시 진을 세우기 전에 3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면 우린 전멸이었습니다. 당시 배준장님은 기지 주변으로 반지름 500미터 길이로  하룻에 무려 23곳의 공중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등병부터 말년 병장 부사관 장관들 까지 손톱이 안빠진 사람이 없습니다. 공중길의 끝에 구름처럼 보이도록 흰 천을 걸고 좌표와 흰천이 걸린 나무를 찾으라고 끊임없이 좌표를 날렸습니다.
덕분에 295명이 살아돌아왔습니다. 172명이 295명을 살린 것입니다. 배준장은 그들을 도우러 가지 않고 그들이 살아돌아올 길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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