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근혜의 최악의 범죄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은 교과서적 의미의 ‘정부’란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정부’란 공익을 챙기는 공적 기관이라면 박근혜의 행정부는 ‘정부’와 거리가 멀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박근혜 행정부는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이라는 비합법적 방법으로 관료체계를 편법적으로 장악한 사조직에
가까웠다. 권력을 편취한 이 사조직은, 그 뒤로는 이미 한참 진행 중이었던 대기업들에 의한 국가 사유화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연결고리로 작용했다. 최순실과 그의 재단들이 대기업들의 돈을 챙기는 만큼 대기업들에 필요한 인허가와 법률들이 소위 ‘정부’에
의해서 급조됐다.
이 구조에서는 공익에 대한 고려란 들어설 여지 자체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재벌과 관벌들이 대주주로 있는 하나의 주식회사라면,
‘최순실 게이트’란 일부 대주주와 지배인, 그리고 지배인의 측근들이 작당해서 회사 운영을 사리사욕에 희생시킨 배임사건 격이 될
것이다.
한데 공공성이라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은 배임은 구조적 문제다.
대주주와 지배인의 야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대체로 저범죄 사회다. 예컨대 살인율(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건수)은 스웨덴이나 덴마크와 같은 유럽 복지국가보다 더 낮다.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법적 처벌을 받는데다 전과자로서 남은 평생을 이등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한데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조직은, 계속해서 범죄들을 저질러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박근혜 행정부의 범죄성이 짙은 ‘정책’들을 단순 열거하려 해도 여러장의 종이가 필요할 정도다.
세월호 침몰 당시의 직무유기, 국가 주권을 포기한 전시작전권 전환 무기한 연기,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비를 인상시킨 부동산 대책, 백남기 농민의 목숨을 빼앗은 시위진압시 살수차 사용,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짓밟은 한국사 국정교과서…
이 ‘정책’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곤 했기에 단순히 열거만 해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이 모든 패악질 중에서도 2013~14년의 ‘이석기 사건’, 즉 의회의 제2 야당 격이었던 통합진보당의 법적 해산과 이석기 전 의원 등의 구속과 재판은 특기할 만하다고 본다. 이 사건으로 1987년 대투쟁으로 쟁취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사실 ‘이석기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민주국가라면 지배자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민중세력들에게 적어도 합법적인 활동의 공간이 주어진다.
2010년대 초반의 한국에서는, 통합진보당은 그런 민중세력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컸다. 명부상 당원 수가 10만명에 달했고,
총선에서의 득표율은 약 10% 정도 되고, 의석 13석을 보유했다. 당의 간부 중에 상당수는 노동조합·시민단체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당대표이던 이정희는 대중성이 강한 유명 정치인이었다. 당의 뚜렷한 지지기반은 일부 조직노동자와 재학 시절에 정치투쟁의 경험을 쌓은
일부 30~40대 고학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사민주의적 재분배 정책과 민족국가 완성을 지향하는 요구(미군 철수, 남북한 통일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련의 정책)의 혼합인 통진당의 강령은, 대체로 지지계층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표방했다.
재분배 정책, 즉 각종 사회임금(복지비용)의 증가는 당연히 피고용자들에게 유리하며, 민족국가 완성, 그리고 세계적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과의 거리두기를 지향하는 것은 여러모로 국가의 재분배 기능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진당은 현실정치에서
집권여당의 친재벌 신자유주의나 제도야당의 사회적 자유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민중적 ‘대안’을 대표했다. 그러면, 특정 사회 계층들의 지지를
받는 대안적 정치세력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것은, 과연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민주주의와 함께, 국가를 장악한 사조직에 희생된 것은 사법정의다.
민주국가의 특징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지만, 통진당을 강제 해산시키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는 이미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다. 사법을 가장한 정치적 탄압의 가장 노골적인 경우는,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열, 이상호,
조양원, 홍순석, 김근래 등 통진당의 여러 간부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 주장의 핵심적 부분들이 사실상 허위로 판명됐다.
피고들이 “만들었다”는 RO(“혁명조직”)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혐의 내용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이석기 의원의 체포 당시에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대북 연계”도 어디에서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석기 전 의원은 1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9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서 언급된 그의 “범죄” 내용은
-전세계가 반인권적이라고 여기는 국가보안법의 위반 이외에는- “내란선동”이다. 120여명에게 했던 90분짜리 정세 강연 녹음테이프에
의거해서 살인자나 강간범이 받을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과연 사법을 가장한 정적 제거가 아니면 무엇인가?
거기에다가 문제의 테이프가 공안기관에 의해서 여러 곳이 변조된 점까지 염두에 두면, 이런 재판이 사법정의의 사망을 알렸다는
생각만이 자꾸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국내 도시마다 “박근혜 하야하라!”는 힘찬 함성이 들린다.
편법을 동원해 대통령직을 장악하고, 그다음에 민주주의와 사법정의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 이외에 ‘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정객이, 그 국정운영의 ‘비법’이 탄로난 지금 같은 시점에서 하야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데 과연 민주주의와 사법정의를 죽인 것은 박근혜 한 사람만이었을까?
최근에 출판된 ‘이석기 사건’을 다룬 책 <이카로스의 감옥>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꼼꼼히
모은 이 책을 읽다 보면, 박근혜 사조직의 민주주의와 사법질서 파괴에 수많은 협력자가 있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석기 재판’ 과정에서 RO의 실체가 없었으며 문제의 정세 강연이 있었던 행사가 ‘비밀회합’이 아닌 정기적인 정당 행사였다는 부분이
다 밝혀졌지만, ‘이석기 사건’이 터졌을 그 당시에는 <조선일보>나 <한국일보> 등의 여러 신문이 국정원이 집필한 “이석기 내란음모”
소설을 사실인 양 보도했다.
정보기관과 언론이 정언유착을 이루어 정권의 정적에 대한 종북몰이, 공안몰이를 같이 하면 민주주의나 기초적 인권상식이 온전히 남을 리가
있겠는가?
민주국가에서의 인권 상식인 무죄추정 원칙이, 근거 없는 혐의를 유죄판결처럼 보도하는 언론에 파괴되고 말았다. 또 다른 민주주의의
보루인 국회는 일찌감치 종북 마녀사냥 앞에서 두 손을 들었다. 2013년 9월4일에 있었던 이석기 체포동의안 국회투표에서는 반대표는
14표에 그쳤으며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과 정의당마저도 찬성을 당론으로 정할 정도로 공안 일색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지금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는 야당들은, 그 당시에는 사실상 박근혜 일당의 정적 제거를 도와주고 있는 꼴이었다. 또 검사와 판사 등
사법부는, 박근혜의 반인권적 종북사냥에 앞장서고 있었다.
박근혜 패거리가 ‘이석기 사건’을 비롯한 반민주, 반인권 폭거들을 이렇게 손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주류’의 해묵은 반민주성,
반민중성이 있었다.
고급 공무원이나 거대언론부터 제도야당까지, 재벌과 박근혜-최순실 패당에 의한 국가의 사유화보다 민중들의 정치세력화를 훨씬 더 두려워
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본격적 변화를 원한다면, 엉터리 대통령의 퇴진, ‘이석기 사건’ 피해자를 비롯한 양심수들의 석방뿐만 아니라 박근혜
패당의 협력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