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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서는 안될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역사.jpg
게시물ID : history_8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16
조회수 : 183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12 09:03:38

1909 년 10월 26일.

 

한국 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하고 동양의 평화를 교란한 죄를 물어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의 식민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일제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동안 일본 검찰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 가지를 제시하고

 

군인의 자격으로 적국의 수괴를 사살한 전쟁행위이니 법원의 재판을 받을 것이 아니며

 

전쟁 포로로서 취급할 것을 요구하며 재판을 부정하였다.

 

 

 

국내외에서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러시아, 영국 등 각국의 인사들이 변호를 자처하였으나

 

일제는 일본인 국선 변호사의 변호조차 허가하지 않으려 했고 다음해 2월 사형선고를 내린다.

 

안중근 의사는 1910 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한다.

 

이때 안중근 의사의 나이 향년 30 세.

 

 

 

그는 사형 직전 자신의 마지막 바램을 전한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모습



 

 

시간이 흘러 조국은 독립하였고

 

독립운동을 이끈 백범 김구선생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목숨을 내던진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서울에 효창공원을 조성하고 독립투사들의 유해를 찾아와 안장하고 그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김구선생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의사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고 맨 왼쪽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어

 

언젠가 안의사의 바램대로 반드시 유해를 찾아와 묻어주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김구 선생마저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채 암살당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 송환은

 

안보를 열심히 강조하던 역대 군사정권의 무관심과 방치속에 그대로 잊혀진다.

 

 

 

 

현재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삼의사의 묘. 가장 왼쪽 안중근 의사의 무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과 공동으로 중국의 협조아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했었고

2007년 들어서 여러차례 실무접촉 및 자료수집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까지 추정하여 탐색작업을 준비한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이후 북한을 배제한 남한의 일방적인 추진이 있었으나

안중근 의사 고향이 북한이고, 후손들 또한 북한에 모두 살고 있는고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수 없는 중국의 비협조로 실패한다.

 

 

 

 

 

그리고 그렇게 방치하는 사이, 안중근 의사가 묻혔다고 추정되었던 뤼순감옥 뒷산은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모두 파헤쳐진다.

 


 

 

 

앞쪽은 뤼순감옥 기념관, 뒤쪽에 건설된 아파트.

 

 

 

현재 서울 효창공원에는

 

그렇게 세분의 독립투사의 묘와, 뜻을 이루지 못한채 암살범의 총탄에 돌아가신 김구선생의 묘와 함께

 

어쩌면 영영 주인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를 안중근 의사의 빈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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