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통화로 상징되는 은밀히 감추어져 있던 사실들이
드러난 참담한 시국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정치란 국민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정된 유무형의 사회적인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공의와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중요한 결정을 책임 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는 몇몇 사람들이 주도해왔다는 사실은
뒤통수 후려침을 당한 후의 망연자실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왕이 접신한다는 자에게 유혹되고 그의 거짓에 현혹되어 망하는 사실은 이미 성경에서도 자세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되면 빠져들지 모를 유혹이므로 그 대목에 관해 묘사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역사적인 베스트 셀러인 성경의 교훈을 잠깐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울왕은 지금부터 약 삼천여년 전의 이스라엘 초대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스스로 재해석해서 탐욕을 구하다 버림받은 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응답도 듣지 못하자 두려움에 떨던 사울왕은 결국 무당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그에게 자문을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한 마귀의 거짓 속임수였습니다.
결국 그 자신과 자식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자살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이것은 사무엘 상서에 기록된 것으로
지금부터 약 3천여년 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흑역사였습니다.
1. 사울 왕이 무당을 찾아야 했던 이유
사울왕이 접신하는 무당을 찾았던 이유는 자신이 몰린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삼상 28:5
사울왕에게는 이미 적들을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권욕에 사로잡혀 가장 충성스러울 수 있었던 다윗을 십년 가까이 쫓아다니며
그를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쫓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번번히 살려주었습니다.
결국 사울왕은 왕위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자신만의 망상에 사로잡혀 증오의 날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걱정이나 막연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적하러 몰려드는 대군처럼 암담하고 어찌 해볼 수 없는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묘한 목소리나 임시 방편의 돌파구를 찾아 자기 자신 돌아보는 것을 소홀히 하기도 쉽습니다.
해결책이 이미 자신에게 있었고 정말 중요한 것을 외면하며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이유일지 모릅니다.
2.사울왕이 찾은 접신하는 무당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사울왕은 신하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무엇을 묻고자 했을까요? 이제 블레셋 대적과 싸워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해 주셔서 능히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여 하나님께 등을 돌린 후여서 그는 다른 차선책이 필요했습니다.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실 사울왕은 무당이나 신접한 자, 우상을 따르는 자들을 멀리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있다면 율법에 따라 죽여야했습니다.신18:10~12,레20:6,27
그는 그들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과거에 취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8:3-7
하지만 사울왕은 하나님 말씀을 불신앙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왕위를 빼앗겨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될 것과 그가 다윗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토록 다윗을 죽여 없애기 위해 그를 쫓았던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사울왕은 하나님을 떠났고 궁지에 몰린 결과 대적을 눈 앞에 두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변장을 하고 숨어 있는 무당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노릇이었습니다.
사울왕은 스스로 하나님을 완전히 배신한 것은 아니라고 되뇌었을지 모릅니다.
그가 신접한 여인을 통해 만나고자 했던 것은 죽은 사무엘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으로 사울왕 자신에게 기름부어 왕이 되게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고 없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어리석었던 것은 죽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신접한 여인의 입을 통해
땅에서 올라와 여인의 입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보기좋게 속아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그럴듯하게 신접한 여인은 사무엘의 혼이 올라온 것처럼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3. 사울왕이 만난 진짜 같은 가짜 사무엘
두사람의 신하들을 이끌고 변장한 사울왕은 다볼산 밑자락 엔돌로 찾아갔습니다.
밤이 맞은 때였습니다. 여인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눈치빠른 그녀는 범상한 생김새의 처음 찾아온 이들이 뭔가 사연있는 사람들임을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여인 : 네가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알텐데
어찌하여 내 생명에 덫을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사울왕 :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신접한 여인(이하 여인) : 내가 누구를 그대에게 불러 올리기를 원하나이까?
사울왕 :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신접한 여인은 그가 불러온 사무엘을 보자 사울왕을 향해 소리 높여 말합니다.
여인: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은 이 나라의 사울왕이시니이다.
사울왕 :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 : 내가 한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왕 : 그 모양이 어떠하냐?
여인 :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왕은 그가 곧 사무엘이라고 생각하고 땅에 얼굴을 대고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무엘 역할 여인: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짜증나게 하느냐.
사울왕 : 나는 지금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 왔나이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어떤 식으로도 내게 대답을 해주지 않사옵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그들에 대하여 대처하면 좋을지 배우는 길은
당신을 불러 올리는 것 밖에 없었나이다.
사무엘역할 여인 :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한 연고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여 너희로 패하게 하시리라.
내일이 되면 너와 너의 아들들이 죽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충격을 받은 사울왕은 그 자리에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블레셋의 침략을 당하고 그렇잖아도 두렵고 떨려 사울왕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내뱉는 그 말을 듣고는 완전히 극한 두려움 속에 빠져 기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울왕은 흐느껴 우는 것도 아니고 신음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공포에 질려 공황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흘러 간단하게 요기를 한 그들은 그 밤에 일어나 다시 전쟁토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길보아산에서의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크게 패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비롯한 세 아들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날 사울왕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것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을 길을 찾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대신
이미 다윗의 군대가 블레셋의 배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군대로 하여금
블레셋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울이 다윗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능히 대승을 거둘수도 있는 전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죽기살기로 쫓았던 사울이었기에 그럴 염치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위기에 몰려 그러한 돌파구가 바로 곁에 있는줄도 떠올리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울왕을 보좌하던 참모들 그 누구도 다윗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지혜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안타까운 사실이었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사무엘이 가짜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살아 있었다면 그러한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한 사무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짓 영의 수법은 언제나 신접한 여인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죄를 짓는데는 그럴듯한 유혹거리를 보여서 죄를 짓게 만들고 망하게 하지만
일단 망하게 된 상황에서는 악한 영이 먼저나서 그를 죽을 때까지 악한 모습으로 그를 절망하도록 책망하며
악독하게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사울왕이 사무엘을 불러낸 목적은 블레셋과 어떻게 싸워야 좋을지 듣기 위함이었지만
그것에 관해 쓸모 있는 도움은 한마디도 듣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에 범한 잘못을 책망하고 살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죽을 것이라며 의욕을 꺾어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가 무당에게 어떠한 실제적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그것은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당의 입에 속임을 당하거나 겁박을 당할 뿐 허깨비가 우리 삶에 개입해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울왕이 실제로는 자신을 살려주는 존재며 도움이 되었지만 오히려 다윗을 쫓아내고
죽이려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자신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를 몰아내고 미워하며 두려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지혜를 줍니다.
정직과 공의만큼 귀하고 친절과 양선만큼 아름답고 사랑만큼 유익을 주는 복이 없음을...
그것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기에 진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