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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게시물ID : history_80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racun64
추천 : 2
조회수 : 7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11 17:56:43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현실의 문제도 걱정되지만 가장 우려스럽고 틀림없을 것은 지난 30년간 미화되어 온 그의 역사가 더욱 왜곡되고 잊혀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지금 하지 않으면 5년 후에는 그 진실조차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탐사를 한 것이 아니라 구글에 검색을 하면 나오는 공개된자료를 바탕으로 함을 밝힌다. 그리고 이미 많이 기사회된 이야기라는 점을 밝힌다.(명예회손 꺼져)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경제성장을 이룩한 초인이다. 둘째 민주주의를 안드로메다로 보낸 독재자다. 둘다 팩트에 기반을 둔 평가이다. 경제발전을 이끈 장본인이 박정희 본인이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성장의 이면이나 군부독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해 보겠다.

박정희를 말하기 위해서는 '국부' 이승만부터 말해야 한다. 초대 총선에서 김구선생님의 당이 보이콧을 하며 이승만의 당과 대다수의 지역유지로 이루어진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탄생하고, 그 국회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 후 두번 더 대통령을 해먹고 4.19로 망명을 가기까지 이승만은 말 그대로 무능 그 자체였다. 때문에 미국의 막대한 전후복구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승만대에서는 경제회복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후 장면내각의 고민은 경제회복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나 온것이 '경제계발 5개년 계획'! 

장면내각이 성립된지 2년 '경제계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실행되기 직전, 드디어 6.25전란 내내 부산에 숨어있던,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로인해 장면의 경제개발 5개년은 박정희의 '경제계발 5개년 계획'으로 탈바꿈 되게 된다. 

한편 장면 내각 당시 한국의 경제는 북한과 비교해서 10배 가량의 차이가 났다고 한다. 이것을 가장 걱정하는 세력은 냉전의 최전선에 선 존.f.케네디! 일본을 기준선으로 소련과의 대치를 하던 미국은 남한의 경제위기는 공산화의 적색신호였다. 당시 공산주의 혁명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규모 지원을 남한에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때 박정희가 쿠데타를 이르킨것이다.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경제 성장의 파트너로 박정희와 손잡게 된다. 하지만 그의 남로당 전과로 인해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박정희 정권 초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첩사건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독립운동가들이 간첩으로 많이 죽었다. (이는 그의 친일 행적으로 부터의 콤플랙스일 수도 있다) 어짿든 이렇게 장면의 계획과 미국의 경제적, 인적(케네디의 참모진) 지원에 힘입어 박정희는 산업화를 시작한다. ( 이때 장면의 5개년 계획은 케네디의 참모진에 의해 보완수정되어 있었다) 

이때 가장 좋아한 나라가 바로 일본! 박정희의 친일 행적을 본 일본은 미친듯이 환장을 했다. 왜냐면 일본은 전쟁직후 미국에 의해 재정비 되고, ( 이것이 미국에 의한 첫번째 산업화, 두번짼 당연히 한국) 우리나라에 무기를 팔면서 경제성장을 했었는데, 10년 가까이 호구가 없어졌다가 드디어 자신의 똘마니가 호구의 대가리가 되니 얼만나 반가웠겠는가. 그러면서 맺은것이 한일협정, 단순히 산업화 자금조달에 급급해 근대사 반백년에대한 사과를 퉁쳐버렸다. 이것 때문에 아직도 독도와 위안부할머니들이 우는 것이다. 

또 한가지 화룡점정은 쿠데타 직후 박정희는 전국의 부자들을 모아다가 국가재건비라는 명목하에 삥을 뜯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부자들은 대동단결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만든다. 그리고 이 단체는 박정희 정부에게 성명을 보낸다. " 경제계발을 위해서 우릴 좀 밀어줘! (뒷돈은 보너스)" 당연히 박정희는 오케이! 드디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이 탄생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가 수입을 통재하면서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해 와 비료를 만들어 판것이다. (정권과 기업으 상부상조의 시초)

그러나 그의 기회주의적인 장미빛 인생은 슬슬 핏빛으로 물드는데, 모든 것의 시발점은 미국의 대다수의 의원들이 박정희에게 매수되었음이 청문회 중에 들어나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산업화의 속도가 이해된다.) 어짿든 이렇게 박정희와 미국의 밀월관계는 끊어졌고, 동시에 경제계획은 사리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일쇼크가 로인해 박정희의 말년은 최악의 경제를 맞이한다. 

항상 역사의 전환은 경제위기에서 부터 온다고, 박정희경제의 몰락은 말미암아 자신의 죽음을 불러왔다. 김재규의 증언을 보자면 당시 국정운영에 관해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음을 알수 있었다. 경재위기와 통치집단의 분열. 그렇게 박정희는 몰락했다. (그러나 전두환이 부활시겼지만.....)

박정희는 초인이 아니다. 그냥 기회주의자 군인이었을 뿐이다. 빌린 정책, 비린 돈, 삥뜯은 돈, 뇌물로 만든 지원으로 이루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래도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 있다. 산업화가 박정희의 업적이 아니라는 점만 말하고 시었다. 동시에 그의 사리사욕을 위해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빨갱이가되고, 재벌이 탄생하고, 힘없는 대학생들이 술시중을 들고, 위안부할머니들이 아직도 눈물흘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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