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무엇이든 빨리 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시간을 돌이켜보면 두 아이를 키울 때의 마음이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큰아들의 경우 아무래도 첫 아이이다 보니 급한 마음이 많이 있었다. 큰아들이 삼 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제 곧 이유식을 해줘야 할 텐데, 무엇을 어떻게 해줄지 무척이나 고심했다. 이유식을 빨리해줘야 성장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 개월이 되면 쌀미음으로 시작하겠지만 그 전에 미리 과일즙으로 사전 훈련을 시켜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삼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귤즙을 짜서 한 숟가락을 떠먹여 주었다. 사고는 잠시 후에 생겼다. 그때까지 잘 먹고 잘 싸던 아이가 갑자기 막 울더니 초록색의 무른 변을 싸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초록색의 변이 나오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돌이 다 되어갈 무렵이 되었다. 당시 나의 모든 관심은 언제 걸음마가 시작될 것인가였다. 아들이 걷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걸음마가 빨라야 더 건강하고 튼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십일 개월 차가 되었는데 일어나 걸을 생각을 안 했다. 만십이 개월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두 발로 일어나 섰다. 하지만 발을 떼지는 못하고 그저 서 있기만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기에 십일 개월에는 성큼성큼 걸어 다닐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신체 발육이 특별히 빠른 것이 아니니, 그러면 두뇌 발육을 빠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열심히 한글 카드를 보여주고 읽어 주었다. 심지어는 아이에게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 아이가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간에 열심히 영어를 썼다. 한번은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들이 "잇츠 어 빅 엘리베이러." 이러는 것이다. 아, 그동안 열심히 조기 영어 교육을 시켰던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글을 특별히 빨리 뗀 것도 아니었고 영어에 특별히 재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내뱉은 "잇츠 어 빅 엘리베이러." 이 한마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글은 일곱 살에 떼었고, 영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알파벳을 식별하는 정도가 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리고 시도했던 모든 '빨리'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조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이것저것 해주려 했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이번엔 천천히 작은아들을 낳아 키울 때는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한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조금씩 한의학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동의보감의 내용 중에서 마치 나를 야단치는 듯한 어떤 구절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신체 발육 속도에 관한 것으로 "일찍 앉고 일찍 걸으며 일찍 치아가 나오고 일찍 말하는 것은 모두 불길한 성정이므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이 구절은 충격이었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기대하고 시도했던 그 '빨리'라는 것이 실은 좋지 못한 성정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신체 발육이 다른 아이보다 유난히 빠르면 커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뇌 발육의 속도에 관해서도 놀라운 이야기가 연이어졌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알고 깨닫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여 여느 사람들보다 뛰어나면 요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요절한단다. 두뇌 발육이 유난히 빠른 것이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뜻을 미리 알아채고 머리의 회전이 민첩하고 빠르면 이 역시 요절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머리 회전이 민첩하고 빠른 것이 전혀 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아이를 키울 때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 보았다. 동의보감의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둘러봤자 소용도 없었던 큰 아이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식도 칠 개월이 한참 넘어서 시작했다. 언제 걸음마를 시작하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한글 카드나 영어 카드는 보여준 적도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한글을 가르쳤다. 영어는 아예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한글은 읽을 줄 알았지만 영어는 알파벳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학교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우는데 자신만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이다. "굿모닝!" "하우 아 유?" 간단한 인사말은커녕 에이비씨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씨인 상태였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작은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재와 영어 테이프를 놓고 꾸준하게 가르쳤다.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몰아서 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하는 것이 훨씬 좋다. 그래서 하루 삼십 분씩 매일같이 영어를 가르쳤다. 그렇게 매일같이 가르치기를 십 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눈이 뜨인 것인지 교재의 영어 단어를 폭포수의 물이 쏟아지듯이 줄줄 읽는 것이 아닌가. 나는 두 팔을 번쩍 들고 크게 외쳤다. "만세! 아들아, 네가 드디어 영어 문맹에서 탈출했구나! 우리 아들 만세!" 이미지 갤러리 가기 느린 아이가 롱런한다 지나고 보니 '빨리'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 빨리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 한 달 빨리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 일 년 빨리 한글과 영어를 깨치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이 정말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한참 자란 후에 뒤돌아보니 한 달 빨리 걸음마를 떼는 것이 내 아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일 년 빨리 한글을 깨친다고 내 아들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빨리 걷고 빨리 깨치기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조급한 마음으로 키웠던 큰아들과 느긋한 마음으로 키웠던 작은아들은 신체 발육과 두뇌 발육의 속도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엄마가 아무리 서두르고 옆에서 재촉해도 아이는 결국 자기 속도대로 자랐다.
오히려 서둘러 이유식을 했더니 아이의 장이 깜짝 놀랐을 때 생기는 초록색 대변만 나오게 만들었다. 재촉했더니 부작용만 생긴 셈이었다. 늦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쳤더니 오히려 더 짧은 기간 내에 깨우쳤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더니 몸도 덩달아 편해진 셈이다. 한글과 영어 가르치는 일이 엄마로서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니 말이다. 지나고 보니 이렇지만 아이를 한참 키울 당시에는 뭐든지 빨라야 똑똑하고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신체 발육이 유난히 빠른 아이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못하고, 두뇌 발육이 남다르게 빠르면 요절한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남긴 것 같다. 그렇다면 발육이 느린 아이가 건강하단 뜻일까? 그렇다. "아이의 골격이 법도를 이루고 움직임에 위엄이 있고 머리를 쓰는 것이 느려서 사람이 정신을 좀 써서 가르쳐야 하는 아이가 오래 산다." 신체 발육에 있어서는 빨리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골격이 온전한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뇌 발육에 있어서는 머리 회전이 느려서 더 많이 가르쳐야 하는 아이가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그러니 우리 집 아이는 이유식을 빨리 시작했다고 뿌듯해 할 필요도 없고, 이유식을 늦게 시작했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걸음마가 빠르다고 흥분할 필요도 없고, 걸음마가 느리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한글을 세 살 때 깨우치게 했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한글을 일곱 살이 되도록 못 깨쳤다고 우울해 할 필요도 전혀 없다. 오히려 골격이 튼튼하면서 배움이 느린 아이가 롱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요즘의 조기 교육은 어찌 보면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노력 들여서 '알고 깨닫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여 요절하는 아이'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아이를 아름다운 사람, 오래 사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자. 이유식을 서두르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에서 나는 음식으로 만들어 주되, 억지로 떠먹이지 말고 때가 되면 더 잘 먹겠거니 기다려주자. 도대체 언제 걷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보다는, 성장의 기반이 될 골격이 온전한가를 살펴주면서 팔다리를 주물러주자. 한글 하나, 알파벳 하나 더 주입시키기 보다는, 많이 놀아주고 안아주면서 엄마와의 정서적 유대를 더욱 깊게 해 주자. 그렇게 한다면 아름다운 사람, 오래 사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