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사건은 이번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꾸준히, 수시로, 생각지도 못할 상황에 튀
어나올 일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진중한 숙고를 통해서 이의 해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으로 시민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여긴다.
2. 우선 현재의 한국형 페미니즘 운동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앞장서 나서
서 극렬한 주장을 하는 일부 여성들의 주장이 모든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성들 주장을 덮고
마치 그들만이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듯이 나서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상황이다. 워낙 그들
의 주장이 강렬하고 몰려다니면서 공격성향을 보이다보니 생겨난 착시현상인데, 문제는 자신
들과 입장이 다른 여성들, 자신들의 편을 들지 않는 여성들에게까지 벼라별 입에 담을 수 없
는 혐오적인 표현을 쓰고 비하하며 자신들의 헤게모니 전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
는 것이고, 이 행태가 실은 여권신장에 많은 부작용을 빚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3. 특히나 이들은 자신들이 남성에 억압당한 약자이니까 이에 대한 저항방법으로 남성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남자 놈들 미러링으로 안되
니 칼로 쑤셔 버린다’, ‘남자를 임신하면 낙태 시켜서 태반을 먹으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극
단의 혐오와 증오의 표현을 해도 된다며 무분별하게 자신들의 증오를 발산하고 있다. 내 개인
적으로는 어느 집회 무대에서 열 받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박근혜에 ‘년’이라는 표현을 붙었다
는 이유로 이를 ‘여성혐오’라고 규정하는 여성 발언자의 모습을 보고, ‘그걸 굳이 여성혐오라
고 주장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헤머로 당신(둥글이) 부랄 터쳐 버려야 한
다’는 댓글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한다.
4. 상대방이 정말로 ‘여성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 억압’을 공고히 할 의도가 있으며, 지
속적으로 여권을 침해하고 남성지배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자라면 ‘미러링’이라
는 방법으로 그렇게 저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어쩌다 자기들이
듣기에 기분 나쁜 말 한마디 한 것을 ‘100% 완벽한 여성혐오’ ‘100% 완벽한 여성혐오자’로
규정해서 그것이 남성이던 여성이던 가리지 않고 극단의 혐오, 성희롱, 증오발언을 쏟아내서
공격한다. 이러한 행태는 여권신장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무턱대고 전파하려는 [고
루한 독단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의견 같은 것은 묵살하거나
폄하하고 배움이 낮아서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경직된 시민 운동판의
상징이 되다 시피한 [엘리트 주의]의 변형인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대단히 선진
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은 의식이 떨어진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존의 엘리트 주의자들 처럼 상대방을 이해-설득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고,
아예 무시하고 깔아뭉게고 짓밟아 버리리는 전략을 취한다. 이렇기에 그들의 글을 보면 증오,
혐오, 욕설로 점철되어 있다. 이로인해 일반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들
의 방법론의 오류가 아닌 ‘대중들의 무지’로 규정하고 계속 자신들만의 아집을 오히려 극단화
시키는 전략을 집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악순환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 이러한 문제가 여권신장에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 것인가는 최근 미국의 대선에서 힐러리가
패배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여성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흑인에 대한 차별도 심하지만 그보다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욱 교
묘하게 뿌리내린 사회다. 이렇다보니 여성에 대한 참정권 보다 흑인에 대한 참정권이 먼저 주
어질 정도였다. 문제는 7,80년대에 여성주의자들이 극렬한 방식으로 여권신장을 부르짖기 시
작했다. ‘이런 식의 지지부진한 방법으로는 안되겠다. 한번에 뒤짚어 엎자’는 의도였을 것이
다. 이들이 바로 현재 한국의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전신이 되는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 중에 너무 현실과 괴리되어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들이 있었던 듯 하고
이때문에 대중들의 반감이 심해졌고 결국 대중들로부터 고립 당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페
미니즘’이 코메디 프로 가십거리가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페미니즘 = 가십꺼리’와 동격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되자 ‘여권신장’은 커녕 오히려 ‘여권하락’의 결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번에 힐러리가 패배했던 이유 중의 하나 역시 그러한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의 결과
로도 볼수 있다. ‘정신나간 놈은 뽑아도 여성은 안뽑겠다’는 여성차별 주의. 이렇다보니 만약 7,80
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이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트럼프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
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음에 아쉬움이 가져지는 것이다. 이는 전반적으로 대중 정서까지를 고
려해서 전략적으로 나서지 않고, 가슴속에 쌓인 증오와 혐오를 무턱대고 쏟아 낸 부작용의 단
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6. 자.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치열함과 장렬함이라도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7,8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존경한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그들은 갖은 수모와 손가락
질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와서 여성차별에 맞서서 목소리를 외쳤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대응에
대한 고민이 조금 부족했던 점은 좀 안타깝지만, 그 치열함과 장렬함, 실천력은 정말로 존경
을 보낼만 하다.
그런데 현재 ‘메갈리아(워마드)’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거의 안보인다. 인터넷상
으로 자신들이 맘에 안드는 남성 여성들의 글을 공유해서 비난 혐오의 글과 함께 올리는 것이
거의 활동의 전부이다.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차단하고 달아난다. 정의당 여성위원회
소속 당원이 워마드 운영자 일을 하면서 벼라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이간질을 부추기고
증오를 사주한 사건도 드러난 터이다. 상당수가 페북 가계정을 만들거나 워마드 카페 등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이들에게 욕설을 하고 증오와 혐오를 쏟아내는 것을 ‘페미니즘운동’이
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서로 고무되다 보니 서로 더욱 극단적인 표현을 경쟁적으로 하며 이를 즐기
고 그러한 극단의 표현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 여성운동가들이 가진 책임감의 100분의 1도 못 가지고서, 미국 여성운동
가들 보다 훨씬 극렬하고 과격한 주장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다.
‘여권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유럽사회도 성적인 농담과 장난 같은 것도 어느 수준 이상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런데 한국의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기분 나쁘게 여겨지는
모든 표현을 여성 혐오’라고 규정하여, 그 표현을 사용한 사람을 인신공격하고, 도덕적으로 단
죄한다. 이런 극단과 결벽의 페미니즘 운동은 전 세계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
는 그로 인해서 여권이 신장되면 말할 나위 없을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여권신장의 걸릴 돌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
지만, 그들은 애초에 전략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쌓여 있는 증오를 발산 하
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것이기에 이러한 문제를 살필 여력도 없는 듯 하다.
7. 자. 긴 서론의 끝에 이제 본론이다. DJ DOC이 광화문 무대에 오르지 못한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페미니스트들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의 엘리트 운동권(주최측)과의 공조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DJ DOC가사가 여성혐오’라며 이 문제를 제기하자, 주
최 측에서는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렴했다. 주최 측이 내건 이유는 ‘차별과 혐오는 안된다.’
는 이유였다. 그리고 DJ DOC 사태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최측 관계자들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밑도 끝도 없이 ‘차별과 혐오는 안되기에 DJ
DOC을 무대에 세울 수 없었음’을 거듭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
면서도 경직된 기존의 엘리트 운동권에 대한 아쉬움을 거듭 갖게 된다.
물론 DJ DOC의 노래 가사에 ‘여성혐오의 소지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 제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서로의 이해관계
를 조절하면 된다. 그런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은 100% 여성혐오다’고 규정한 것이고,
주최측에서도 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자기들이 애써 초대했던 DJ DOC을
‘100% 여성혐오자’로 규정해서 수모를 주고 쫓아내다 시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의적 책임
이라도 지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 점 양해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도리지, 주최측 관계
자들은 ‘차별과 혐오는 안 되기에 DJ DOC을 무대에 세울 수 없었음’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있
다. 이런 유체 이탈 화법을 과연 어디서 배운 것인가?! 이런 책임없는 폭력이 여권신장이
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그 덕에 김진태 바람대로 촛불이 사그러드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다. 민중들이 깔아놓은 판인데, 자기들 헤게모니 강화하고 자기
들 권리 찾기, 자기들 밥그릇 넓히는 장으로 만들려고 운동판을 쪼개는 행태가 아
닌지 우려스럽다.
8. 사실 우리는 ‘각자의 형이상학’을 갖고 스스로의 삶에 임하고 있다. 자신이 인식하는 바대
로의 믿음을 공고히 하면 그것이 자신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겨 먹은 것
이다. 이에 따라 각자의 인생 경험과 나아가야할 항로가 다르다보니, 세상에 어떤 완벽 공감
할 수 있는 진리도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상대적인 진리만 머릿속에 구축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조차도 특정 믿음의 체계를 가진 이들에게는 부인될 정도로 ‘완벽한
100% 공유되는 진리’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주장은 100% 진리다’는 극단의 형이상학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른
것 같으면 무턱대고 공격하고 자신들의 내부에 쌓인 증오를 쏟아내는데 여념이 없다. 박근혜
에 대한 분노의 표현에 ‘년’이라는 표현을 쓰면 ‘100% 여성혐오자’로 규정하고, 무차별한 공
격을 서슴치 않는다. 이는 자신들의 형이상학만을 극단적으로 끝까지 밀고 간 결과임의 사실
을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설득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없고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폄
하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는데만 바쁘다. 자신들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주장은 그 어떤 표현도
거침없이 모두 허용되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주장은 ‘년’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상대방을 인간
적으로 모독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해도 된다는 식이다. 이러한 발상은 [독단의 형이상학 중에
서 최악의 경우]이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두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천명의 사람 중에 단 한명이라도 불편한 마음이라도 가지면 안된다’는 ‘절대순결주의’
가 그들의 입장이다. 그렇기에 그 절대 순결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나머지 999명의 사람의 마
음을 불편이 만들고 여성혐오자를 만든다. ‘결벽증’과 ‘독단의 형이상학’의 이상적인 조화이다.
전세계 어떤 페미니스트들도 이런 논리는 취하지 않는다.
재미난 사은 여기에는 '약자 여성의 주장이니 허용되어야하고 이를 문제삼는 놈들은 찌질이
다’는 가부장주의적 남성 시혜주의가 교묘히 침투해 들어 있다. 이런 이율 배반이 교묘하게
엮어져서 작금의 헤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듯 한데, 문제는 작금의 엘리트운동권에서 이
를 수용하면서 상황을 악화 시키고 있다. 나는 이들이 서로 똘똘 뭉쳐서 페미니즘 운동을 말
아 먹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된다.
9. [옳고]과 [그른 것] 사이에는 ‘옳은 것 같기도 하고 그른 것 같기도 한 것’, ‘옳게 보이지만
그른 것’ ‘그르게 보이지만 옳은 것’등등 수도 없는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다. 인생사가 컴퓨
터 소자처럼 이진법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저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의심할 여지 없이 100% 그른 것, 틀린 것, 여성혐오’라고 규정하
고 공격 본능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런 표현이 어찌 100% 여성혐오냐? 조율
해서 판단해야 하지 않냐?’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를 ‘여성혐오자’의 주장이라고 우격다짐
하는 경우도 있다. 양쪽 주장 중에 한편만 골라야 한다는 강박증과 결벽증의 결과이다. 이를
바로 ‘극단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 극단주의를 마치 훈장인 것 처럼 자랑하
고 있다.
10. 특히나 어설프게 먹물 먹은 이들이 푸코의 해석학(권력을 해체해서 계보학적으로 재해석
하는 방식)과 마르크스 주의에 경도 된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하여 ‘힘 약한 여성들이 강한
남성계급을 전복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험한 욕설과 혐오 증오를 막 퍼트려도 되고, 조금만 기
분 나쁘면 그것을 여성혐오로 규정해서 공격해야 한다.’는 식의 되지도 않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남성 일반과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을 ‘적’으로 규
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혁명론이 그들의 사상에 기반에 깔린 이유이다. 동양식 철학과
문화는 전부 저열하고 서양식 이분법 문화만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남에게 강요하는 저들의 행
태가 심히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이것이 최신 운동의 경향인 것 처럼 떠벌려지면서 젊은 층등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사회적 약자일 지라도... 자기들이 사
용하는 문법을 구사하지 않는다고 맥없는 사람들을 ‘100%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여성혐오자’로
규정하고, 인간적으로 폄하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행태는 [독단의 형이상학, 부조리한 폭
력]으로 규정한다.
11. 정리 - 위에서 한 말은 ‘여권운동하지 말라’ ‘페미니즘 운동 반대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권신장 필요하고, 여성 차별 사회, 여성 억압사회에서 그러한 운동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
다. 여성들은 남성중심 사회에 싸워야하고 남성도 이를 도와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난데없는
극단성’이 여권신장에 어떻게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들이 나서서 여성가족부 때려 부수거나 문제가 되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 나서서 목소리를 외친다면 그에 동조할 수 있고, 함께 참여도 할 수 있
다. 과거로부터도 페미니즘 집회에 종종 참여 해 왔다.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이해는 커녕, 여태껏 먹고 살기도 바빠서 이번 계기를 통해서
간신히 참여민주주의에 이해를 넓혀가는 대중들에게 다짜고짜 ‘페미니즘의 극단적 경향’을 그
렇게 무턱대고 강요하고, ‘년’이라는 표현 하나 했다고 ‘당신들은 100%여성혐오자다’라며 규
정하는 행태 자체는 시민들의 참여를 막고, 시민사회를 말아먹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간 시민
사회 문제가 되어온 '엘리트주의'의 극단의 경우이다. 그래서 이때문에 한간에서는 '‘국정원들
의 공작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일베, 국정원놈들이 하는 것보다 이런 논란 한번 만들어
내면 시민사회의 심각한 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여태껏 그들의 행태를 봤을 때는 시민사회가 무너지던 말던 자신들의 권리 신장에만 관
심이 있는 듯 해서 이런 말이 들릴지 조차 의문이지만 말이다.(실로 그들 ‘페미니스트’를 자처
하는 이들 중에서는 남자든 여성이든 동성애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배후에서 전략적으로 남녀
의 갈등을 증폭시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상당히 많음을 확인한 터이다. 그간 양성애
의 사회에서 겪은 피해의식을 그렇게 병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어떻게 남녀 갈등을 극화시키는지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12. 나는 저들이 [100% 확신과 독단의 형이상학]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사
람들 각자는 각자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기에 ‘여자들은 다 정신 나간 년들이다’는 식의 명
백한 여성혐오발언이 아닌 경우에는 함부로 ‘절대의 형이상학’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즉 집회
발언 중에 화김에 ‘년’이라는 표현을 쓴 정도나 DJ DOC의 노래에 등에 “그건 100% 여성혐오
야”, “당신은 100% 여성혐오자야”라는 주장 자체를 하거나, 강요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경계선상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그것은 여성혐오의 가능성이 있다.”면서 개선의 요구
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규정은 일반 대중들에게 ‘파시즘의
전조’로 밖에 보이지 않기에 결코 수용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미국과 같은 페미니즘의 쇄락
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3. 끝으로 왜 현재와 같은 그러한 극단적 페미니즘의 방식이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먹힐 수
없는 이유를 분석한 [여성 차별과 억압을 공고히 하는 찌질한 남성성]에 대한 글을 링크하도
록 한다. 작년 7월에 여성 차별사회를 만드는 구성원의 남성으로서 반성하면 쓴 글이다.
https://www.facebook.com/sosmyworld/posts/1096113323788654
이 글에는 남성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정리되어 있는데, 이를 모르고 남성을 힘으로 눌러
서 여성 차별을 철폐 하려는 그러한 시도 자체가 왜 문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정리되어 있으
니 남자들 바꾸고 싶은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여성들의 적이 아니다. 정말 이 사회가 성평등의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작금의 극
단의 페미니즘 방법은 성평등의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변 동력을 거세시키는 부적절한
방법임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물론 이 역시도 나만의 편협한 주장일 수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