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학기 방학에 돌아온 집엔 예전 같은 활기가 없었다. 언제나 밝은 분위기였던 집 안에 대화가 없어졌다. 부모님은 도통 그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처음엔 두 분의 사이가 나빠진걸까 염려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독촉장들과 저축은행 이름이 적힌 명함들을 발견했다. 가정불화는 아닌걸 확인했지만, 당연히 다행이라고 생각할 리 없었다.
엄마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여러번 여쭤봤으나, 돌아온 대답은 항상 같았다.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잘해라. 그게 효도하는기다.”
엄마 눈엔 나는 아직도 곱게 키우고 싶은 막내였나 보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장학금과 학자금으로 어떻게든 완납이 되어있었고, 비행기표 역시 왕복으로 끊어놨기에 미국으로 돌아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도착하고 나서부터였다. 엄마에겐 그 전 학기에 받은 학자금이 조금 남아서 돈 보내줄필요가 없다고 얘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 학기를 버틸 생활비와 식비가 필요했다. 가을에 입대가 확정되어 있으니까 한 학기만 버티면 되는데, 당장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하고 고민이 됐다.
자주 가는 한국 음식점에 갔다. 한국 밥 없이 못사는 내가 입학 직후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은, 학교에서 도보로 15분정도 걸리던 곳이였다. 정통 한식집은 아니였고, 일본식 벤토(도시락) 박스에 한식과 일식을 함께 파는 퓨전 식당이였다. 워낙 자주 찾아가 금새 그 집의 단골이 되었고, 그 곳에서 일하시는 젊은 아저씨와 곧 친해졌다. 스시 바에 앉아서 밥을 먹다 별 일 아닌것 처럼 아저씨에게 능청스럽게 혹시 일 할 사람 필요없냐고 여쭤봤다.
“왜, 일하게? 한명쯤 필요하긴 한데, 이따 사장님 오시면 여쭤봐.”
강한 대구 사투리를 쓰시는 사장님은 40대 후반-5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나는 그 전에 일 한 경험도 없고, 아저씨와는 다르게 사장님과는 그렇게 친하진 않아서 약간 걱정이 됐다. 곧 사장님이 돌아오셨고, 아저씨가 자초지종을 대신 설명해주셨다. 사장님이 날 힐끗 보더니 이내 물어보셨다.
“니 독수리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냐는 속어였다. 학생비자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은 돈을 벌 수 없으니까.
“네, 맞는데요.”
“그럼 내일부터 나온나.”
시급 7.5불, 하루 5시간, 1주일에 4일에서 많게는 6일.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에겐 귀한 생활비였다. 거기에 일하는 시간동안엔 식사가 제공되었으니 더 이상 좋은 조건이 없었다. 엄마한텐 돈을 안 보내줘도 된다고, 일 하면서 용돈 벌 수 있다고 하니까 내심 좋아라 하셨던 것 같다. 예전같으면 돈은 보내줄테니까 공부나 잘하라고 하셨을 분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일은 주문 접수, 간단한 음식 제작, 음식 전달, 그리고 청소 등 다양했다. 학교거리의 단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식당이였지만, 나름 캠퍼스 근처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였기에 식사시간엔 줄이 식당 문 밖까지 이어지곤 했다. 주문받고, 음식이 나오면 2층에 있는 손님들에게 갖다 주고를 정신없이 반복하다 보면 빠르게 시간이 가곤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이 많았지만, 사장님과 아저씨의 배려로 항상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의 감사표현이 알바생들에게 참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직접 깨달았다. 한국인, 미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음식을 받으면서 “땡큐”라고 얘기해 줄 땐 괜히 내가 정말로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뻤다. 그래서 칭찬을 좀 더 받으려고 손님이 오면 기쁘게 인사하고 웃으며 맞기 시작했다. 하루는 2층의 테이블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혼자 밥먹으러 온 백인 아저씨가 날 계속해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못 본 체 하면서 계속해서 하던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서 아저씨가 나에게 한마디를 하고 지나갔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아저씨가 먹고 자리를 비운 테이블엔 1불짜리 지폐 한 장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낸듯한 동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팁을 받지 않는 식당이였기에, 내가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팁이였다. 그깟 1불이 뭐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라는 얘기를 해서 고백하건데, 일을 하다가 정말로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공급업체에서 원래 제공하는 도시락 박스의 재고가 떨어졌다면서 전혀 다른 모양의 박스를 준 날이였다. 도시락 박스 안의 반찬 배치가 애매해지자 어떻게 임시방편을 마련했는데, 그만큼 평소보다 회전 속도도 느려지고 손님들의 불만도 커져만 갔다. 덕분에 여러모로 모두가 예민해졌다. 내 정신도 어디로 갔는지 평소에도 안 할 실수를 두번 연속으로 했고, 얼마가지 않아 세 번째 실수를 했다. 짜증이 제대로 났을 아저씨가 내 면전에서 제대로 좀 일해라고 소리쳤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크게, 대놓고 비난을 받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였다.
지옥과도 같던 그 날의 업무가 끝나고, 폐점준비를 하면서 마루걸레로 바닥을 닦는데 괜히 몸이 떨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전화 받는척 금방 돌아오겠다 하고 식당앞에서 남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사장님이 담배를 피러나오셨다. 사장님이 훌쩍이는 나를 금새 눈치 챘는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허허 하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내새끼가 그런일로 말라고 우노, 곧 군대도 갈 놈이. 니 잘하고 있다. 너무 신경쓰지 마라.”
어째 나의 눈물은 더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넘길수 있을까 걱정했던 군대 전 마지막 학기도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끝나고 있었다. 시간이 남을땐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만 하다보니 돈 쓸 일이 없어 오히려 저금이 되는 기적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1주일은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저씨와 사장님 모두 그동안 고생했다며, 언제든지 밥먹으러 오라고 송별해주셨다.
그런 말씀을 안하셨어도 찾아갔을 나였다. 기말고사를 앞둔 직전의 토요일 밤, 룸메이트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너무 한국 밥이 먹고싶었다. 룸메이트를 꼬셔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대학교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였다. 분명 5월의 첫날인데, 비와 우박이 번갈아가면서 퍼붓는, 문자 그대로 참으로 지랄맞은 날씨였다. 신발과 양말을 젖어가며, 입으로는 룸메이트와 함께 궁시렁되며 겨우겨우 식당에 도착했다. 물에 젖은 생쥐같은 꼴을 하고 있는 둘을 본 사장님이 껄껄댔다.
“야 우째 이 날씨에도 오나? 어서 온나.”
날씨때문에 손님이 아예 없었는지 아저씨는 이미 퇴근하고 사장님만이 홀로 그 작은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룸메이트는 갈비 도시락을 시켰고, 나는 뭐 먹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국 밥이 먹고 싶었던거지, 무슨 메뉴를 먹을지는 딱히 생각을 안하고 왔었다. 계속해서 고민하는 걸 지켜보던 사장님이 기다리시다 지쳤는지 나에게 물었다.
“니 회덮밥 좋아하나?”
5개월동안 일한 내가 확신하건데, 회덮밥은 이 식당에 없는 메뉴였다. 의아해 했지만 회덮밥 앞에선 그깟 의구심이 중요한게 아니였다. 회를 먹은지도 1년, 회덮밥을 마지막을 먹은지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났다. 들뜬 목소리로 그렇다고 하니 사장님은 이내 칼을 잡으시더니 그날 쓰고 남은 생선감들을 알맞게 썰기 시작했다. 그러곤 밥이랑 비빔밥에 쓰는 야채들 몇개를 넣으시더니, 냉장고에서 일하는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빨간 조미료통을 꺼내오셨다. 초고추장이였다.
“우리가 이번 여름부터 새 메뉴 내놓을려 하는데, 니가 먹어보고 평가해봐라.”
참깨와 참기름까지 같이 섞더니 먹음직스러운 회덮밥이 내 앞에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 생선이 신선하고, 야채의 조화가 좋고, 초고추장의 양이 적절하고 같은 그런 디테일이 아니였다. 그냥 맛있었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다 씹기도 전에 한 입을 또 먹었다. 미스터 초밥왕의 사연에 나오는 캐릭터가 된 기분이였다. 옆에서 부러운 눈치로 지켜보던 룸메이트에게 몇 입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양도 충분했다. 비바람을 뚫고 와서 인생 한끼를 뚝딱 해치웠다. 지금도 누가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밥이 뭐냐”라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않고 이 날 먹은 회덮밥이라고 얘기한다.
사장님께 회덮밥 대박날꺼라고, 꼭 메뉴에 넣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웃으시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 웃음은 틀림없이 회덮밥 대박을 예감한 웃음이였으랴.
군대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짐을 풀지도 않고 바로 구보로 그 식당을 찾아 갔다. 아저씨와 사장님은 나를 자식이 제대한 마냥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 한끼는 공짜로 먹고 가라고 하셨다. 식당 한쪽칸엔 2년전엔 없던 LED TV가 식당의 메뉴를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 생겼을 회덮밥을 먹을까, 갈비를 먹을까 고민을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메뉴엔 회덮밥은 없었다.
“사장님, 그 때 그 회덮밥, 왜 안넣었어요? 진짜 맛있었는데.”
“뭐 회덮밥? 아… 그거? 뭐, 가격맞추기도 힘들고, 마진도 안 남을것 같고해서… 그냥 안넣었다. 그냥 갈비 먹어라 갈비, 제일 좋은 부위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