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누군가 뺨을 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돌을 가슴에 올려놓은 듯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저는 병실 안이었어요. 소독약 냄새와 제 턱까지 올라와 있는 하얀 이불을 보고 알았죠. 의사도 간호사도 없었는데 장교복 차림의 한 남자가 "괜찮냐"고 물어올 때에야 비로소 제가 아직 군인이고 그래서 지금 군 병원에 있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제 옆에는 3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모두 시체처럼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모습이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눈을 떴을 때 마주할 어떤 것이 두려워 뜨지 못 한다는 느낌, 네 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은 끊어져 있었어요. 어디서 부터 끊어졌는지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완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부대 중대장이란 사람이 와서 "괜찮냐"고 묻는데 그는 제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른 3명에게 가서 말을 붙였습니다. "김진식 병장, 이일병, 대답좀 해 봐." 그들 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중대장이 뒤돌아 섰을 때 저는 분명 봤습니다. 그들 중 가장 창가에 인접해 누운 한 명의 병사가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눈을 찌푸려 다시 쳐다봤을 땐 다시 그는 천장을 향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잘못 본 줄 알았나요?"
"네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고요?"
"직접 얘기했어요. 그리고 확인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님을 말이죠."
그날 밤 저는 화장실에 갔다와 침대에 다시 누웠습니다. 불은 완전히 꺼져 있었고 제가 있던 병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심지어 숨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누가 제 침대 곁에 서는 거에요. 누군가 해서 일어나 봤더니 아까 저를 쳐다보고 있던 그 병사였습니다. 뭐가 우스운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너, 하나도 기억 안 나?" 저에게 물었습니다. "기억 안 납니다." 저는 으스스한 기분을 삼키며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어요. 발작적인 웃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턱에 맺혔습니다.
"선생님은 미친 사람들도 많이 만나니 그런 웃음 보셨을 겁니다."
"어떤 웃음이요?"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짓는 웃음, 마치 사자가 고라니의 창자를 훑어 먹으며 지을 만한 그런 웃음 말입니다."
그는 웃음을 멈추더니 제게 컵을 하나 눈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뭔가 해서 봤는데 평범한 물이에요. 아니 평범한 물이었겠죠. 불이 꺼진 암흑 천지에서 물인지 피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잘 봐?" 그는 고개를 90도로 꺾어 저를 쳐다보는 상태에서 자기 새끼 손가락은 컵 안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시계처럼 천천히 돌렸습니다. 그러다 우뚝! 손가락을 멈췄어요. "기억 나?" 마치 칭얼 거리는 애기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그럼 다시" 그리고 그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기억 나?"
"아."
"어떤 일이 있었나요?"
"기억이 났습니다. 마치 번개를 맞듯 그 모든 일들이."
Part 2.
그 날은 우리 부대가 강 인접 지역에서 훈련을 받던 날이었어요. 한 쪽에서는 보트를 들고 옮기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강에 들어가기 전 준비 운동을 했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대 전체 행사로 상당히 분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훈련을 받다 보면 강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강 하류 쪽에는 반드시 그물을 설치했고 구조자를 위해 부사관 간부들이 보트로 상하류를 오갔죠. 저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이 확성기를 통해 제 이름을 불렀어요. "야! 야! 빨리 뛰어와!" 저는 부리나케 달려갔죠. 저 말고도 다른 병사들을 불렀습니다. 3명이요 이들이...
"병실에 같이 누워있던 그 3명이군요."
맞아요. 그들이었습니다. 수영을 잘 하거나 힘이 좋거나 구조자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 우리였습니다. "잘 들어! 지금 위에서 훈련하던 데서 한 명이 낙오돼 떠내려오고 있다는 무전이 왔다. 너희 네 명은 가서 그물 설치하고 구조 작업 하는 거 도와!" 중대장은 명령했습니다. 우리는 강에 뛰어가 늘 하던 대로 강 양 쪽에 건너가 그물을 쳤어요. 구명 조끼를 입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기억나냐고 물었던 병사도 있었겠군요."
"물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병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모범 병사였어요. 비록 제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그물을 다 설치 하고 나서 '00부대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좀 우습기도 했지만 그런 군인 정신이 참 돋보이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물을 설치하자마자 약속한 듯 시야에 한 병사가 들어왔습니다. 오면서 바위에 부딪혔는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 공포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뭐랄까, 연기하는 듯한 작위스러운 느낌도 들었어요, 동물의 직감일까요. 저는 그 때 깨닫고 도망쳤어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빠르게 내려왔고 저는 소리쳤습니다. "이거 붙잡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는 물을 마시며 떠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그물 바로 앞에서 멈춰섰어요. 우리 네 명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수심이 낮아 발로 디디고 멈춰 섰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그저 갑자기 멈춰 선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그리고 웃었어요. 찢어지는 비명소리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얼굴을 쓱 들이밀더니 "너희도 들어와! 여기 재밌어!"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상류에서 훈련했던 부대는 물살이 빨라 철수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중대장에게 어느 누구도 무전을 친 적이 없었습니다.
Part 3.
"뭐였을까요 그건?"
"2007년에 한 병사가 강에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사의 죽음이 탐탁치가 않은 구석이 있었어요. 조사했더니 이 병사가 부대 내에서 왕따를 당했던 병사였다는 소문이 돌았다더군요. 스스로 선택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체는 한강 합류 지점에 이르러서야 발견했다고 합니다. 엉망 진창으로 찢겨진 채 말이죠."
"그랬군요. 병실에서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다음날 아침 그 병사는 목을 매단 채 숨진 상태로 발견 됐습니다. 저는 그의 시체를 봤어요. 하지만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왜일까요? 사람은 죽고 나면 강해진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저도 강해진 것은 아닐까요?"
"죽었다고요? 당신이요?"
"그래요."
"저는 이제 그만 해야겠습니다. 상담 시간이 다 됐군요.."
"00부대 김00병장. 당신이 날 죽였잖아. 지옥에서 널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자 이제 나랑 같이 물로 들어가자. 재밌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