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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을 위한 한 걸음
게시물ID : lovestory_794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dIUm
추천 : 1
조회수 : 4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12 1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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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인생을 말할 때 보통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몸만 새로 태어나서는 실제로 새로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생의 물꼬를 바꾸려면 살아있을 때 스스로 방향을 틀어야지 이 자리에서 죽으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로워지는 기회는 언제일까요? 일생에 새 번의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사춘기입니다. 사추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살다가 문제의식을 처음 갖게 되는 시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 하자는 대로 말을 잘 듣다가 한 존재로서 자기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부모 말을 잘 안 듣고 반항도 많이 하지만 또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때 그냥 넘어가더라도 두 번째의 기회가 있습니다. 갱년기가 해탈로 갈 수 있는 인생의 두 번째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무의미해지고 허무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정말 사는 게 뭘까? 내가 누군가? 하는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동안 몸에 너무 집착해 있다가, 자식에 집착해 있다가, 남편이나 아내에 집착해 있다가, 가족에 집착해 있다가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에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진지히게 자기 자신에게로 관심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나쁘게 말하면 이때가 방황의 시기고, 좋게 말하면 인생을 새 출발할 시기, 정말로 생을 진지하게 돌아볼 시기입니다. 
 세 번째 기회가 또 있습니다. 은퇴하고 7,80이 넘어서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죽고 자식하고도 떨어지고, 혼자 외롭게 있을 때 입니다. 늙어서 인생을 돌아보면 그 동안 싸우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악착같이 했는데 돌아보니 가슴에 상처만 남아있지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싶은 겁니다. '정말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안 살겠다' 할 만큼 진지한 발심이 들지만, 그때는 이미 몸뚱이를 어떻게 해 볼 수 없지요. 이렇게 해서 똑같은 인생으로 돌고 돌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세 번의 기회 말고도 특별히 기회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친한 사람이나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는 게 뭔지 돌아보게 되죠. 그런 큰 고통을 겪을 때, 세상에서는 이걸 불행이라 하지만, 그것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큰 불행이라는 것 속에 크게 깨닫고 발심해서 인생이 새로워지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비만인데 어떻게하면 살이 빠질까' 하는 것이 고민거리입니다. 이것은 안 먹으면 되고, 일 많이 하면 되지요. 그런데 그런 것 하나 해결 못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다짐하지만 그것도 해결 못합니다. 운동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안 하잖아요. 설탕, 커피 안 먹어야 한다 하면서 그것도 못 지킵니다. 술 안 마셔야 한다, 그것도 못 지키잖아요. 남편에게 잔소리 안 해야지 하면서 날마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살아온 습관, 몸에 밴 습관, 마음의 습관에 속박되어서 늘 못 벗어나는 거예요. 화내고는 '안 내야지', 짜증내고는 '안 내야지', 욕심내고는 '안 내야지' 하면서도, 물건만 보면 욕심나고 사람 얼굴만 보면 짜증이 납니다. 자기에게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도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계속 하루하루 삽니다. 아내는 '아이고,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 남편도 '아이고, 마누라 잔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 애들은 '아이고, 우리 엄마 잔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 부모는 '애들이 애를 먹여서 못 살겠다.' 이렇게 부부가 되어 서로 괴롭히고 부모 자식이 되어 서로 괴롭히며 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고 남을 괴롭히는 데 씁니다. 
 수행을 하면 무엇보다도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져요. 그러면 에너지가 남지요. 그래서 남을 돕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의 삶을 깊게 돌아봐야 됩니다. 
 이제는 남편이나 아내를 의심하고, 또 타인에 대해서 피해의식 갖고, 자기가 잘 났다는 과대망상 갖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방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내고 짜증내고 욕심내고 잔소리하고 거짓말 하는 데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그저 추앙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르침이 위대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실제로 행복한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게 이끌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출생, 출가, 성도, 열반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져 불가의 명절로 이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삶도 나날이 새롭게 시작하라는 수행의 의미로 느낄 때에 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새로이 해봅시다. 속박과 굴레의 집을 한번 떠나보자는 거예요. 보따리 싸서 집 나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남편을 외면하고 아내를 외면하고 자식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림으로 해서, 집착을 놓아버림으로 해서 자유로워져 보자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죽어서 새로 태어나야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습관, 즉 카르마에서 벗어나는 길에 들어서야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누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혀 아우성치다가 고치의 구멍을 뚫고 나방이 되어서 날아가듯이, 카르마에서 벗어나야 부활이라 할 수 있지요. 이것이 해탈이고 열반입니다. 바로 그 길로 가는 것, 감옥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게 출가입니다. 부처님이 동쪽 성문을 넘어서 출가를 하셨다는데 우리도 굴레 속에서 갇혀 살다가 문을 열고 자유를 향해 밖으로 한 번 나가봅시다. 
출처 법륜스님의 '날마다 새날' 中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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