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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존엄성을 가진 기록물, 조선왕조실록 편찬 과정
게시물ID : history_79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18
조회수 : 130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3/06 01:59:01







아래 승정원 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에 전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이야기를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실록을 이해하기 위해선 실록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해야합니다.


성리학 체제는 시스템상 신권을 존중하는 것 같으면서도 왕권이 의외로 상당히 강한 체제입니다.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기에 막말로 왕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자하면,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왕보다 더 높은 사람. 

지위상으론 존재할 수 없지만 가족력으로 본다면 왕보다 더 높은, 

왕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힘을 빌리는 것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반정으로 왕을 끌어내리는 수 밖에 없는데... 전자의 요행이나 후자의 무리수를 함부로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실록입니다.

왕이 하는 행동과 말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함으로써 

왕을 견재하기 위한 수단이자 그 행동거지를 바로잡기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또 현대 어떠한 사건에 어떠한 일을 했는지 후대에 알려,

잘한 일은 따르고 잘못한 일은 고쳐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한 지침서의 역할도 동시에 했지요.



그런 실록의 시작은 사관에 의해 시작됩니다.

사관은 왕 옆에 언제나 졸졸 따라다니며 왕이 한 모든 말과 행동을 적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사관이 적은 기록을 사초라 하는데, 

왕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궁궐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나 토론, 강연, 대신들의 행동과 말까지 모두 적은 기록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사초는 2부로 작성되는데, 하나는 춘추관이라 하여 역사서를 편찬하는 부서로 제출되고,

다른 한 부는 사관이 자신의 집에 보관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초는 왕이 죽을 때까지 공개가 불가하고요.



짧으면 몇 개월, 길면 수십년동안 모아놓은 사초의 공개는 당대 왕이 죽으면서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실록의 편찬이 이루어지지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개인이 하루에 중요한 이야기만 적은 일기를 수십년간 적는다 해도 그 분량이 상당할텐데,

궁궐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적은 기록의 양... 상상이 가시나요?

문제는 실록은 사관의 사초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관의 기록은 궁궐내의 사건만 적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책적인 대화는 왕 앞에서보다 오히려 궁궐밖에 있는 관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지요.

이런 기록을 모아 춘추관에 보관한 걸 시정기라 합니다. 이것 역시 당연히 참고해야죠.


또 승정원은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 같은 기관인데,

그곳에서 또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과 대화를 따로 기록합니다. 이게 승정원 일기입니다. 이것도 참조합니다.


이뿐아니라 지방관들이 조정에 보낸 장계, 대신이나 유생들이 왕에게 올린 상소, 

의금부에서 재판을 하며 기록한 재판 기록 등등을 모두 다 모읍니다.

승정원 일기가 얼마나 많은지 들어보신 적 있지요? 조선 역사 절반의 기록밖에 없는데도 실록의 5배의 분량..

그런데 그런 승정원 일기도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데이터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데이터를 토대로 실록은 편찬됩니다.

당연히 이 내용을 모두 실록에 담을 수 없습니다. 분류하고 정리해야죠.

최대한 필요하다 싶은 내용만 모아 정리합니다. 그마저도 글이나 대화의 내용이 번잡하면 압축을 하려 노력합니다.

(물론, 내용이 정말 중요하다 싶으면 요약하지 않고 전문을 모두 기재합니다.)


이런 모든 기록이 아주 엄격한 실록 편찬 지침서에 의거해 분류되고 정리되어

다시 원고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초초본과 중초본입니다.


만들어지는 과정만봐도 힘들죠?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초본과 중초본을 다시 또 교정합니다. 

틀린 글자나 빠진 글자가 없는지 내용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검수하는 거지요.


검수가 끝나면...이제 활자를 이용해 활판을 만들어 인쇄를 합니다.

인쇄가 끝나면 당연히 마지막으로 또 문제가 없는지 확인 교정에 들어가고요.


이 모든 과정은 춘추관의 각기 다른 부서가 나뉘어져 담당합니다.

어떠한 중복되는 인원은 있겠지만 하나의 부서가 모든 일을 담당하면 반복되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고

문제가 있을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에 나눠서 하는 거지요.

원고를 만드는 부서가 어떠한 실수를 해도 그걸 검토하는 부서는 다른 부서이니 실수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인쇄된 인쇄물의 확인 교정이 끝난 실록 최종본을

봉안하는데.. 이 일만 모든 부서가 다 모여 같이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실록은 아시다시피 4곳으로 나뉘어저 보관되었습니다.



실록은 이렇게 엄격한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실록을 만들기 위해 작성된 모든 초고나 사초는 세초라 하여

강물에 씻어 그 내용을 지워버립니다.


실록 최종본이 만들어진 이상 실록 인쇄본의 원본이 남음으로써 내용이 밖으로 누설되거나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요.

또 이런 과정에서 소비된 종이의 양이 엄청나기에 그걸 재사용하려는 목적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속에 만들어진 실록의 존엄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일단 실록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춘추관에 배치된 사관들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떤 주요한 사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면 대신들이 가서 참고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관만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기에 왕이 어떠한 기록이 필요하다하면, 

사관이나 신하를 통해 실록의 내용을 전해 듣거나 승정원 일기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죠.



문제는 실록의 제작 과정이 아무리 엄격해도 그걸 만드는 건 신하들이고 

당연히 그 분류 작업이나 어떠한 사안에 대해 평하는 사관의 평들은 주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남에 따라 후대의 인물은 전시대에 만들어진 실록 내용이 마음에 안 들 수가 있을겁니다.


자신의 스승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이나,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수도 있지요.

분명 미래의 후손들은 자신의 스승이나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실록의 기록을 보며 이해하겠죠.

당연히... 지워버리고 싶지요. 없애버리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왕도 신하도 아무리 엄청난 힘을 가진 권력자도,

실록만은 건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수정실록입니다.

일종의 변명, 혹은 하소연이지요. 실제 그 일은 그런 게 아니다. 다른 관점의 해석이 존재한다.

기존의 기록만 볼 게 아니라 이쪽 기록도 참고해서 당시의 시대를 바라봐라.


하여 나온 게 선조수정실록이나 경종수정실록입니다.



승정원 일기는 그 존엄성이 실록처럼 엄격하지 않아 내용을 삭제해버리거나 없애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사도세자에 관한 내용이고요.

하지만 실록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번 편찬되면... 그 무엇으로도 내용을 훼손할 수 없는. 그런 존엄성을 가진 기록이고,

그 기록이 현재까지 이어져 번역되고 전산화되어 실록 사이트에만 접속하면,

누구나 다 번역, 한자, 실록 원문 이미지를 모두 볼 수 있는 그런 기록물로 남아있습니다.



삼국지에만 빠져살던 제가 처음으로 삼국지 밖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조선왕조실록을 접하면서입니다. 

'이런 엄청난 걸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구나. 내가 평생봐도 다 볼지 못볼지 모를 기록이 이렇게 내 앞에 있구나.'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있네요.



몇 자 적는다고 했는데 워낙 편찬과정이 상당하다보니 요약한다고 했는데도 길어졌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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