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예요.
당시 신갈에 살던 사촌동생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근처 산으로 놀러 나갔는데 길을 걷다보니 토끼사육장이 있더라고요.
농장이라고 하기엔 좀 작았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땅에서 5~60센티미터 정도 높게 지어놓은 토끼 사육장이었고
크기는 싱글침대만한 것이 두 개 있었어요.
거기엔 이미 제 또래들 몇 명과 저 보다 두세살 많은 듯한 오빠 한 명이 주위 풀을 뜯어 토끼에게 먹이고 있더군요.
아기토끼도 많아서 보자마자 너무 귀엽다고 뿅간 저는 얼른 주변의 풀을 뜯어 토끼사육장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애꾸거나 양쪽눈이 없는 토끼들이 많았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근친교배로 인한 열성유전아닐까 생각드네요)
저는 흠칫했고 거기서 이미 풀을 주고 있던 오빠가 저한테 말하더군요.
"걔 장애야. 걔한텐 주지마."
저는 그 말을 듣고 어린마음에 장애가 있는 토끼들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그 토끼들을 피하고
장애가 없는 토끼들에게만 풀을 주었습니다.
혹여라도 장애가 있는 토끼가 오면 울타리망 사이로 내밀고 있던 풀을 슥 빼버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장애가 없는 토끼에게만 풀을 주려고 하다 보니 바글바글 너무 부대껴서
저는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토끼에게 풀을 주기로 했습니다.
하얗고 작고 귀여운 아기토끼가 와서 제가 주는 풀을 냠냠냠 먹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한참을 주다보니 이게 웬 걸. 한 쪽 눈이 애꾸인 토끼였습니다.
장애가 없는 쪽에서 보니 몰랐던 거죠.
순간적으로 주던 풀을 뺏으려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토끼들도 단지 배가 고파서 오는 건데 장애가 있다고 밥도 못 먹는 건가.
장애가 있는 한 쪽 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주 예쁜 토끼였는데
그거 하나때문에 이렇게까지 미움받는 건 나쁜 것 같다.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닐텐데...'
그래서 계속 그 장애가 있는 토끼에게 풀을 주었습니다.
오물오물.. 계속 보니 정말 예뻤습니다.
한창 그 친구에게 풀을 주다보니 아까 저에게 말을 해준 오빠가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야! 걔 장애야! 먹이 주지 말라니깐!"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뭔가를 깨닫고 나니 말로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싸~하더라구요..
오기 생겨서 장애있는 토끼들에게만 풀 줬습니다.
그 때 그 아이들, 지금은 그런 차별이 부당하다는 걸 깨닫고 올바르게 컸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