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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에게 참된 가르침을 주신 주교의 서품식
게시물ID : lovestory_79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3
조회수 : 7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8 22: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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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천주교 마산교구 제5대 교구장이 된 배기현(63) 콘스탄틴 주교가 지난 8일 경남 창원 마산체육관에서 열린 주교 서품·착좌식에서 한 첫 인사말이다.

염수정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인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등 전국에서 주교만 30여명이 모인 엄숙한 서품·착좌식에 참석한 성직자, 수도자, 신자 등 3천여명은 한꺼번에 폭소를 터뜨렸다.

배 주교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훌륭해서 (주교로) 뽑힌 게 아니라 불쌍해서 불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겸손해서 혹은 겸손을 가장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사실이 그러합니다"고 거듭 말했다.

그가 엄숙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결석은 일상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가출도 했다. 정학만 4번이나 당했다.

말썽꾸러기 수준을 넘어 비행 청소년이었다.

성당은 순전히 용돈을 받는 조건으로 나갔다는데 고등학생 1학년 때 세례를 받게 됐다.

고교 졸업 후에는 재수를 하며 방황했다.

의사였던 어머니는 마산 월남동성당 앞 병원에서 누구보다 아들을 걱정하며 기도했다.

어머니의 기도가 통했을까.

청년 배기현은 어느 날 문득 신학교에 가서 신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40여 년 전 신부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간다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쟤가 신부 되면 개도 신부 되고 소도 신부 되겠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우여곡절을 겪고 12년 만에 겨우 신부가 됐다.

당시 배 주교의 사제 서품 소식은 본당 신자들은 물론 지역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배 주교 사제 서품은 당시 '마산고 3대 미스터리'로 불릴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배 주교는 지금도 사제, 주교가 된 것에 대해 '기가 차다'고 말한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던 날 죄 많은 집안에 신부를 주셨다고 제 어미가 통절히 울었습니다"라고 말했다.

1998년 작고한 배 주교 모친인 전풍자 씨는 1973년 마산에서 개원의 생활을 접고 소외되고 가난한 한센인들이 사는 소록도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쳤다.

배 주교는 "30년이 넘는 사제생활 동안에도 하느님 앞에 똑바로 서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었다"며 "이렇게 커다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온 이 사람을 하느님께서 내치지 않으시고 가여운 마음으로 손을 잡아주셨다"고 자신을 낮췄다.

배 주교는 "방황을 참 많이 했지만 끝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가 나를 믿고 쏟아주신 사랑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두 다 '저놈은 안될 놈이고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사랑은 결국 사랑이 없는 곳에 희망을 거는 것"이라며 "그래서 제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배 주교는 "부모님들은 결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 관점에서는 틀려먹어도 하느님의 눈으로는 언제든지 다른 쪽이 있으니깐 끝까지 사랑하다 보면 길을 열어 주신다"고 조언했다.

그는 "내가 실제로 그랬다"고 껄껄 웃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출처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1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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