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실 사건 초기에는 '그래도 정부를 믿어 보자. 설마 사람을 죽게 놔두기야 하겠냐' '구조는 전문가들이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 그들을 믿고 지켜 보기만 하자' 같은 생각을 가지고(실제로 댓글을 통해 주장도 했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추악한 사실들 앞에서 저는 이 나라의 바닥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나 그저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해경의 늦은 초기대처, 거기에 그 실수를 그저 덮으려고만 하는 해경의 모습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기보다 그저 선거에 활용할 사진 찍기만 궁리하는 정치인 사고대응 매뉴얼은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청와대 보호 매뉴얼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지키는 정부 피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도 없이 그저 자극적인 기사 뽑아내기에만 혈안이 된 기자 오보에 대한 정정이나 사과도 없이 그저 사실을 외면한 채 보도지침만을 따르는 꼭두각시가 된 언론
정말이지, 내가 사는 나라의 민낯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실 앞에 속이 쓰리다가 진정 될 만 하면 또 새로운 치부가 드러나더군요. 정말 바닥이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저는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잃어 갔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전 대한민국이 얼마나 희망 없는 나라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에게 보내진 구호물품의 90%가 10대가 보낸 물건들이라고 하죠. 어린 학생들이 희생에 어린 학생들이 같이 슬퍼해주고,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록 추태란 추태는 다 보여준 대한민국이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4/26, 27일날 광주에서 있었던 5.18 대학생 홍보대사 오리엔테이션이었습니다.
왜곡되는 오월, 아파하는 광주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대학생이 모여 들었습니다. 광주는 물론이고 머나먼 대전, 경기, 서울, 부산, 충청, 경남, 경북, 대구, 울산 전국 각지에서요. 50여개 대학에서 몇백 명의 대학생들이 스스로 '5.18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학점에 치여, 취업난에 치여, 당장 생활비에 치여 뜨거움을 잃어가는 오늘날의 20대이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모두 식어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5.18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5.18의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의 눈빛은 80년대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효과적으로 5.18을 알리고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 5.18 역사 기행단을 모집하기 위해 몇 시간씩 열띤 토론과 토의가 이어졌습니다. 누구하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전남대와 망월동 등을 직접 탐사할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수백 명이 5.18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제 돈을 들여 가며 이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수백 명이나 있었던 거지요.
저는 여기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상황은 분명 절망적입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비록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암울한 현실과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직 대한민국엔 많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암울하더라도 이들이 사라지기 전엔 분명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홍보대사 OT당시, 5.18을 직접 겪으신 분들이 당일 원래 일정까지 모조리 취소하고 OT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전 그 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러분을 보니 이 나라에 아직 희망이 보입니다. 제가 헛된 삶을 산 게 아닌 것 같아 뿌듯합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은요.
여러분, 불의로 가득 찬 이 현실을 외면하지 맙시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에 분노합시다. 그렇지만 그 분노가 절망으로 향하게 두진 맙시다. 관심을 꺼버리지 맙시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그 분노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으로 돌려 봅시다.
투표하는 날엔 성실히 투표를 당선된 정치가에겐 감시의 시선을 잊혀져선 안 되는 역사는 기억을